낯선 땅에서 살아가기
미국에서의 생활은 지역마다 그 특성이 달랐다. 도심에서부터 외곽까지, 주택과 타운하우스, 아파트들이 어우러져 다양한 주거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에는 인도, 유럽, 아랍, 중국 등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음식 냄새만큼은 각 문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우리가 익숙한 냄새가 다른 이들에게는 불쾌할 수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우리 가족은 한국 음식을 자주 해 먹었지만, 늘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음식 냄새가 문제 되어 관리실로부터 경고를 받으면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되도록 빵이나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해결하려 했지만, 항상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한식을 요리할 때는 창문을 활짝 열고, 환풍기를 돌리며 최대한 냄새를 줄이려 애쓰셨다. 그러나 한식의 강한 향은 어느새 이웃에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위층에 새로 이사 온 흑인 여자가 바닥을 쿵쿵대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단순한 수리 작업일 거라 생각했지만, 곧 상황이 달라졌다.
어머니가 한식을 요리하고 있던 중, 갑작스러운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셨다. 혹시 냄새 때문인가? 불안한 마음에 급히 요리를 숨기고, 나물 반찬만 식탁에 올려놓으셨다.
문을 열자마자 그 여자는 어머니를 밀치고 부엌으로 성큼 들어갔다. 너무나 황당한 상황이었다. 만약 우리가 같은 행동을 했다면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어머니는 당황했지만, 그녀를 가로막으며 강하게 항의하셨다. 여자는 부엌에서 냄새가 나지 않자 멋쩍게 사과하고 돌아갔다.
우리는 관리실에 가서 이 일을 이야기하며 인종차별을 당한 것이 아닌지 항의했다. 다행히 관리실에서는 다문화를 존중한다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일로 마음이 편치 않으셨고, 직접 2층으로 찾아가 그 여자에게 따지셨다. "너는 도대체 뭘 먹고 사느냐?"라며 식탁 위의 햄버거를 보곤 "밥도 안 먹고 물만 먹고 살라고?"라고 소리치셨다. 어머니의 대담한 행동에 나는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했다.
이후 어머니는 미안한 마음에 작은 접시에 감자볶음, 잡채, 물김치 등을 담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다음 날 빈 그릇을 들고 와 고마움을 전하며 웃었다. 이후 우리는 서로 조심하며 큰 마찰 없이 지냈다.
어머니는 그때를 떠올리며, 더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하셨다. 청국장 찌개도 끓여 먹은 마당에 그녀가 불쾌할 만도 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는 "우리가 빵만 먹고 살 수 있냐?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줘야지."라고 하셨지만, 그 속에는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이민 생활은 종종 이런 어려움을 동반했다. 우리의 익숙한 것들이 타인에게는 낯설었고, 타인의 익숙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낯설었다. 서로를 배려하려 했지만, 가끔은 그 배려가 온전하지 못했다. 우리는 때때로 사소한 일도 인종차별로 오해하며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곤 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어떻게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생계와 일상을 핑계 삼아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 문을 닫음으로써 더 고립되고 외로워졌다.
누군가 말했다. "미국에서 살려면 미국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그 말에 공감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외지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고, 결국 한인 사회에만 의지하게 될 것이다.
이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거나, 현지에 정착하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이 없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후회할 수밖에 없다. 이민 생활을 돌아보며, 나는 많은 아쉬움과 후회를 남겼지만, 그 추억들을 통해 나 자신을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