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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

아이와 노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나이에 휘둘리지 않는 대화의 중요성

by ㅇㅈㅇ

나이와 성장


어느새 내 나이 30대 중반.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 나이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누군가에게는 벌써 30대 중반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아직 30대 중반일 뿐이다. 나는 그 중간쯤에 서 있다. "내가 벌써 30대 중반이 되었구나" 하면서도 "아직 30대 중반이기에 다행이다"라는 모순된 안도감을 느낀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놓쳐버린 기회들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몰랐고, 알 수 없었기에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후회하기보다, 지금이라도 지난 실수와 무심함을 극복할 기회가 남아있음을 위안 삼는다.


앞으로의 모든 것은 나의 의지와 실행력에 달려 있다.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제는 답이 보인다.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의미가 없다. 해야만 한다. 40대가 되어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다행히도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나 자신과의 대화


"할 수 있어. 괜찮아."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들. 부족함을 아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한심한 것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다. 오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수준에 맞는 하루를 보냈을 뿐이다. 현실을 바라보며 문득 슬퍼진다. 붉은 노을과 소주 한잔, 잔잔한 노래가 나를 위로한다. 아니, 사실은 내가 스스로 그렇게 위로하기로 마음먹었을 뿐이다.


나는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나를 돌아보다


30대 중반이라는 시점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과거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마치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하곤 했다. 이제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유치하고 우스워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은 바뀔 것이다. 나는 나를 변화시킬 힘이 있다. 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하루하루를 버티며 나를 위로하며 나아가면 된다.


이 속 깊은 아픔을 스스로 견디고 감당하는 것도, 이제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처럼,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며.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자


왜 우리는 어린아이를 마냥 어린아이처럼 대할까?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아이의 말에 반응하는 방식조차 존중이 필요하다. "물 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면, 단순히 따라 말하게 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응답하는 것이 아이의 표현 능력을 인정하는 태도다.


부모는 종종 아이에게 가르치려 한다. 그러나 대화는 일방적일 필요가 없다. 아이의 호기심을 존중하고, 질문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아이들은 우리의 존경과 겸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이만을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도 마찬가지다. 교수는 학생의 질문을 피하고, 직장 상사는 권위적으로 말하며, 부모는 자녀를 한없이 어린아이로 대한다. 노인도 예외가 아니다. 연세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가르치려 들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무시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려면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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