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사람을 바꾼다. 이민은 나를 바꿨다.

외향에서 내향으로의 여정

by ㅇㅈㅇ

어린 시절, 나는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MBTI로 따지면 분명 E(Extroverted)였을 것이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차고, PC방을 들락날락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사친, 여사친 가릴 것 없이 학우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다. 수업 시간에는 주저 없이 손을 들고 발표했으며, 반장 선거에도 늘 참여했다.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절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분명히 기억한다.


그러나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내 주위에는 낯선 얼굴들이 가득했다. 빨간 머리, 초록빛 눈동자, 까무잡잡한 피부, 길쭉한 코 등 각양각색의 다인종 친구들이었다. 금발 머리의 선생님 말씀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책상 위에 전자사전을 올려놓고 매번 단어를 찾아야 했으니까.


중·고등학교 시절, 외국인 친구들은 아직 머리가 크지 않아서인지 영어가 서툰 나 같은 아이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점점 더 고립되었다. 그렇게 나는 남모를 속앓이를 시작했다. 과거의 나는 점차 지워지고, 말수가 적고 소심한 새로운 내가 자리 잡았다.


왜 그렇게 변했을까?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대지 않으면 중간은 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표현하지 못하니 최소한 실수라도 하지 않자는 생각이 컸다. 사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도전할 용기도 필요했지만, 나는 그저 창피만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낯선 땅에서도 살아갈 힘이 생겼다. 신체적으로 성장하고, 영어 실력도 늘었다. 이제는 누구도 나를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딜 가든 나는 '주류'가 아닌 '소수'였고, 주류 사회에 속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적응해 갔다.


RMV(Registry of Motor Vehicles) 같은 공공기관을 방문하면 기본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기다림이 익숙해졌다. 은행에서 직원이 쌀쌀맞게 응대해도 그러려니 했다. 이웃 주민이 음식 냄새가 난다고 볼멘소리를 해도 그냥 넘겼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살아남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자동차 딜러십에 차량 수리를 맡겼다. 원래 약속했던 3~4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결국 일주일 만에 서비스센터를 직접 방문했다. 그 과정에서 담당 직원에게 몇 차례 전화를 걸었다. 단순히 진행 상황을 묻기 위한 연락이었다. 하지만 답답함에 한두 번 재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비스센터를 방문했을 때 직원들의 태도는 냉담했다. 나는 진상 고객으로 낙인찍힌 듯했다. 백인 직원들 몇 명이 모여 나를 어린아이 다루듯 비꼬는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 일을 떠올리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나는 고객의 입장에서 정당한 요구를 했고, 선을 넘지 않으려 조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선을 넘었다고 했다. 마치 무지한 이방인을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때 나는 너무 주눅이 들었던 걸까?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어디까지가 선인지 헷갈렸다. 괜히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소수’로 살아가면서 생기는 피해 의식일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틀렸고, 그들이 맞다고 생각하며 나를 바꾸려 노력했다. 그 노력은 더 많이 기다리고, 더 오래 참고, 애써 친절하려는 태도로 나타났다.


국내 유명 스포츠 선수가 해외에서 적응하는 게 어렵다고 말할 때면 나는 내적 공감을 한다. 그 이유를 너무 잘 알 것 같다. 타지 생활은 단순히 언어 장벽을 넘어 문화적 충격을 동반하고, 때로는 나 자신을 포기하는 순간까지 오게 만든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환경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이미 익숙한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그들의 방식과 선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지혜도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환경은 나를 바꾸었다. 이민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과연 환경이 나를 바꾼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린 선택이 나를 바꾼 것일까? 나는 외향적이었던 성격에서 내향적으로 변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많은 것을 바꾸어야 했다. 결국, 환경과 나 자신의 결단이 어우러져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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