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총기 살해 사건이 주는 시사점
지난주 인천 송도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제 총기와 폭발물, 성공한 옛 배우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해 온 아버지가 아들을 계획적으로 살해했다는 막장 드라마 급 설정까지 정말 충격의 연속이었죠.
경찰의 대처 또한 이슈가 됐습니다. 이른바 외상환자의 골든아워가 지나가는 동안 총격을 당한 피해자는 집 안에 그대로 방치되었고, 일찌감치 출동한 경찰은 구조대원과 함께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면 책망을 살 만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용의자가 출동한 지구대원과 1층에서 마주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도 과장은 아니죠.
신고자의 말만 믿고, 범인이 집안에 있다고 확신한 채 이미 알려졌다고 봐야 하는 범인의 성별, 나이대가 일치하는 용의자를 아무런 의심 없이 지나쳐 보낸 지구대원들은 추가 인명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중대한 사명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실 늦지 않게 범인을 잡았기에 망정이지 까딱하면 범인이 자택에 설치했던 사제폭발물로 인해 추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죠.
그러던 중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만에 유가족이 언론에 보낸 입장문은 의문을 풀기보다는 고개를 갸웃하게 합니다. 물론 가까스로 생존한 유가족이 추측성 기사나 오보로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입장문의 내용은 단순히 경찰의 공식 발표까지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당부가 아니라, 유가족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무고함을 적극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물론 변호사가 작성했을 것이라는 맥락은 감안해야겠지만, 함께 모여서 생일을 축하하는 사이였던 가족 구성원이 가족을 대상으로 계획살인을 저질렀다는 믿기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빠르고 단호하게 피아를 가르는 모습은 '이혼에 의한 가정 불화'는 결코 동기가 될 수 없다는 입장문의 내용과 사뭇 상반됩니다.
주변을 챙길 수 있는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이 있습니다. 외국인 가정교사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총기를 든 범인을 향해 뛰쳐나갔다던가, 총에 맞은 피해자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한 시간 넘게 방치됐다는 사실 등은 주변을 챙기지 못했다 탓할 수 없는 상황이고, 사실 여러모로 적절한 판단과 행동일 수 있습니다.
먼저 외국인 가정교사는 성인일 것이고, 아이들을 먼저 챙겨야 하는 어머니 이상으로 총성과 비명, 고함만으로 충분히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가정교사가 자신의 판단으로 총기를 든 범인을 피해 탈출한 것은 단순히 요행이 아니라, 빠른 상황판단과 대처를 통해 2차 피해를 줄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총에 맞은 남편을 방치한 채 방에만 숨은 아내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다르게 행동했을지 묻고 싶습니다. 소리를 잘 들어보면 범인이 집밖으로 나간 사실을 알 수 있다? 범인이 나가는 척 소리를 내고 조용히 다시 들어와 방문이 열리길 기다렸다면 당신과 당신 자녀 모두 죽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가족을 위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었던 어머니지만, 총격 후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범인이 다른 무고한 사람들을 해칠 가능성을 생각하지는 못했던 건 아쉽습니다. 범인이 집 밖으로 나갔을 가능성이 제기됐다면, 범인이 아파트 1층에서 바로 체포됐을 수도, 지구대원과 구급요원들이 총상을 입은 남편의 구명에 성공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면 끔찍합니다. 무고한 가정교사에게도 총을 쏜 범인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시민은 그냥 지나쳤을까요? 자신의 손주까지 살해하려 했다는 범인이 그와는 일면식도 없는 아파트 주민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될지는 자명합니다.
세상에 불화가 없는 가정이 있을까요? 입장문에는 '이혼에 의한 가정불화'는 결코 범행동기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한데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부부 사이에 아무런 앙금이 남지 않았다는 말은 이혼을 원했던 측에서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귀책이 있든 없든 이혼을 원치 않았던 측은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죠.
피해자의 지인에 대한 언급도 있었습니다. 물론 피해자가 알고 지내던 외국인을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고용했을 가능성도 있겠죠. 하지만 일요일 오후 9시가 넘어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 1차 총격 시 가정교사가 피해자와 함께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 가정교사는 '친구 아버지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보다는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 있었다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문에서는 가정교사가 아닌 지인으로 등장합니다.
남겨진 유가족, 특히 아이들의 상처와 충격은 저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살인자인 피의자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입장문은 범행의 잔학함과 피해자의 무고함에 대해서는 너무나 단호하고 확신에 넘치는 반면, 피의자에게는 어떠한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있습니다. 최소한 모여서 함께 생일을 축하할 정도라면 '노망이 들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다'라는 반응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만약 유가족이 원하는 '침묵'이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입장문은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신상공개 반대라는 유가족의 강력하고 합당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어머니가 임원으로 있는 (주)약손명가가 공식 입장을 낸 점으로, 사업적으로 성공한 전처와 아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던 한 남자의 인륜을 저버린 범죄라는 큰 틀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된 듯합니다.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이 실패한 사람을 보살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어찌 보면 실패한 사람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전제 자체가 오만입니다. 단순히 사업에 실패했다거나 취업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인생 전반을 돌이켜 봤을 때 내세울 것 하나 없고 자랑할 만한 것 하나 없는 누가 봐도 실패한 삶일지라도, 당사자는 좋은 경험을 하고 만족스럽게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했다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가져야지 싶습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이 아버지를 위해 제공한 배려는 살 곳과 용돈을 마련할 가짜 직장, 그 외 다수의 실패한 사업에 대한 자금지원과 대학원 학비 등이었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든 물어보면 분에 넘친다 할 파격적인 지원입니다. 누가 이혼한 남편의 학비를 지원하나요? 하지만 입장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헌신과 배려가 상대방에게 올곧이 전달됐다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피의자의 과거 성범죄 처벌사실 등 유가족 그중에서도 특히 피해자 어머니의 넓은 도량을 뒷받침할 증거는 차고도 넘칩니다. 피의자의 그간 행적을 살펴보면, 그에게 정말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돌아올 기회를 줬다하더라도 이를 잡지 못하거나 불만족했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따라서 유가족이 어떤 노력을 했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추측과 논란을 불식할 만한 진정성 있는 배려와 기회가 주어졌었다면 이러한 입장문이 과연 필요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