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영주권자의 법적 지위
5살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와 35년여간 미국에서 거주한 김태흥 씨(40). 결혼식 참석 차 잠시 한국에 방문했다가 강제추방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김 씨는 영주권을 소지했을 뿐 아니라, 명문 주립대로 꼽히는 텍사스 A&M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네요. 워싱턴포스트 지에서 첫 기사 "Scientist on green card detained for a week without explanation, lawyer says"를 낸 후 다양한 매체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성과 위주식 과도한 이민단속 사례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당국은 김 씨가 마약 관련 처벌 사실이 있으므로 추방 대상이고, 이에 따른 절차를 밟고 있다는 입장인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7월 21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받았고, 이때부터 열흘 이상 공항에서 억류 중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공항은 사람을 감금하는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비인도적인 대우와 기본적 권리에 대한 무시가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공항에는 침대나 휴식공간이 없습니다. 김 씨는 하루 종일 불이 켜져 있는 출입국 심사장에서 생활하며, 매점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사 먹고, 의자에서 잠을 청하는 생활을 벌써 일주일 이상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김 씨는 어머니와 전화 한 통이 허락됐고, 지속적으로 출입국관리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대신 보내는 문자를 통해 김 씨의 동생과 소통하고 있는 것 외에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심지어 변호사 접견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다고 하네요.
김 씨가 영주권을 가졌지만 입국거부 된 이유는 대마초 소지로 처벌받은 기록 때문이라 합니다. 이와 관련 김 씨의 이민 변호사에 따르면, 김 씨는 대마초 소지죄로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이를 마쳤으며, 범죄기록에 대해서는 비공개 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은 마약 중에서도 특히 대마에 대해서 매우 관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죠. 실제로 많은 주에서 이미 대마초를 합법화했고, 미국인 48% 정도가 한번 이상 대마초를 피워봤다고 응답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통념일 뿐이고, 실제 연방법 상으로 대마의 향정신성 성분은 계속해서 마약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민법 상으로도 명백히 규정되어 있는데, 통상 두 번 이상, 혹은 한 번이라도 다량(30g 초과)의 대마를 소지한 혐의가 인정된 경우 바로 추방 대상입니다.
김 씨의 경우 30g을 초과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대마초 30g면 자몽이나 작은 멜론 정도의 부피라고 합니다. 이렇게 대량을 소지하다가 적발됐다면 아무리 초범이라도 사회봉사로 끝났을 거 같지는 않죠. 게다가 이민국 입장에서 이렇게 명확한 강제추방 대상을 일주일 이상 공항에 구금한 채 시간을 끌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즉각 강제추방 대상이 되는 강력범죄가 아니더라도 형사 처벌 사실은 반드시 이민국에 공개해야 합니다. 통상 영주권 신청 시에는 범죄기록에 대한 증명서와는 별도로 비공개 혹은 말소된 범죄기록, 더 나아가 간단한 교통 규칙위반 사실까지 포함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러한 응답 내용은, 하나의 답변 만으로 부적격 처분되지는 않더라도, 신청인의 전반적인 성품이나 품행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개 의무는 영주권을 받은 후에도 지속됩니다. 그런데 김 씨 가족이나 변호인의 입장을 들어보면, 대마 소지로 처벌받은 사실을 당국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언급은 빠져 있습니다. 이미 공개했던 내용을 근거로 갑자기 입국거부를 당했다면 억울할 만도 한데 말이죠?
추가로, 정치적인 이슈가 있습니다. 이전 바이든 행정부에 비해 강제추방된 인원 중 마약, 폭력사범의 비중이 더 적어졌다는 보도가 있었죠. 마약, 폭력사범을 강제추방 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과는 상반되는 결과죠. 이에 따라, 당국에서 마약 관련 강제추방 건수를 늘리기 위해 무리를 하고 있다는 짐작도 해볼 수 있습니다.
왜 무리냐고요? 물론 원칙적으로는 단일 사유로도 추방 근거가 되는 강력범죄가 아니더라도, 보고가 필요합니다. 한데 여기에는 사소한 교통규칙 위반이나 납세의무의 위반도 포함될 수 있죠. 하지만 사람들이 살다 보면 한 번쯤 실수나 무지에 의해 겪을 수 있는 사소한 위반까지 당국에 보고하게 되면 어떨까요? 미국에는 2024년 1월 기준 약 1,280만 명의 영주권자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딱 한 번씩만 보고를 해도 1,280만 건의 업무가 발생한다는 거죠. 김 씨가 경범죄 보고를 소홀히 해서 추방한다고 공표하는 순간 이민국의 업무 마비가 예상됩니다.
영주권자는 특정 조건을 만족해 미국에 사는 것이 허가된 외국인이고, 만약 조건을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영주권은 언제든 취소할 수 있습니다. 즉, 강제추방에 관한 조항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추방해야 하는 요건을 미리 정해 놓은 것일 뿐, 해당 조건을 만족하지 않았다고 미국에 체류할 권리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강제추방의 최종 결정은 이민법원의 판결을 따르도록 되어 있지만, 트럼프 정부는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강제추방 결정 전의 불법체류자들을 엘살바도르의 테러범 수용소에 보낸 전력이 있죠.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 지지자 가운데도 마약, 폭력 사범이 아닌 이민자들을 합법적인 신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쫓아내는 데는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합법적인 체류 신분이 있다면 무조건 벌벌 떨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경범죄라도 마약이나 폭력과 연관성이 있는 경우에는 미리 보고하고, 면책(waiver)을 받아두면 좋을 듯합니다. 또한, 불법체류자를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는 도시(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 DC, 산호세 등)로 입국할 때는 조금 더 주의를 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텍사스에 거주하는 김 씨는 아마도 환승을 위해 선택했겠지만, 미국 입국심사는 항상 첫 번째 미국에 도착한 공항에서 이루어지죠. 텍사스 직항을 이용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생각을 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