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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포레스트 Aug 21. 2023

서른둘, 그렇게 자취를 시작했다.

나만의 숲이 되어주는 공간


서른둘, 나는 처음으로 독립을 했다.

어렸던 나는 서른 살이 넘으면 아줌마, 아저씨라고 불러왔었는데 

지금은 서른 살이 넘고도 두 살 더 많은 나이를 가지고 있다.

서른두 살이라 하면 엄청난 어른이라 생각했었는데,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막연하게 독립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었지만 장녀라는 이유로 항상 미뤄왔었다.

하지만, 이번엔 독립을 하지 않으면 영영 못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다. 지금이 독립을 할 때다.


1월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부동산에 원하는 조건과 금액을 말하고 나왔다.

그리고 계속해서 부동산 어플을 들락날락거렸다. 사실, 예전부터 살고 싶었던 오피스텔이 있었다.

하지만 금액이 턱 없이 부족했고, 다른 오피스텔 비해 너무 비쌌던 나의 로망.

탁 트인 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 적당한 소음.

딱 내가 원하는 조건을 다 가지고 있는 완벽한 집이었다.


그 완벽한 집은 금액 때문에 1순위로 제외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집을 봐서 눈이 높았던 걸까, 마음에 드는 집이 하나도 없었다.

가격이 괜찮아서 보러 가면 침대 딱 하나 들어갈 좁은 방 또는 방 안이 훤히 보이는 옆집 뷰.

역시 가격대별로 집의 등급이 나눠져 있었다.


그나마 맘에 들었던 곳이 있었지만, 주변 거리가 너무 어둡고 무서웠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수시로 어플을 들락날락하고, 부동산에 문의도 해봤지만 말짱 도루묵이었다.

결국 혼자 힘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은행 대출로 노선을 변경했다.

한창 금리가 높을 때라 심각한 이자로 다시금 마음을 접게 만들었다.


나이 먹고 집 하나 구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우울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옆에서 계속 묵묵하게 지켜보고 있던 아빠는 슬그머니 내 옆에서 말을 걸었다.

"우리 딸, 어디가 제일 맘에 드는데?"라고 물어봤다.

"맘에 드는 곳은 있는데 금액적으로 너무 부담스러워"라고 말을 끝맺었다.


아빠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지원을 해줄 테니 맘에 들면 결정을 하라며 말끝을 흐리면서 자리를 피했다.

그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이제 몇 년 뒤면 은퇴할 나이라 그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다.

차마 냉큼 지원해 달라고는 말을 못 했다.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이 지날 무렵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부동산 사장님의 첫마디가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보러 와서, 혹시 정말 맘에 드신다면 계약금이라도 넣으시는 게 어떨까요?"

다른 사람이라면 넘어갈만한 통화였지만, 부동산 사장님도 내가 이 오피스텔을 얼마나 원하는지 알기에 전화를 해줬을지도.


사실 부동산 사장님은 나를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2년 전, 막 오피스텔이 지어지고 분양을 할 때, 1순위인 오피스텔을 엄마랑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초록잎이 무성하던 5월, 아무 생각 없이 보러 간 오피스텔은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깨끗한 내부, 고급진 인테리어, 그리고 탁 트인 뷰까지 나의 마음을 앗아갔다.


그 후 1년 뒤, 자취를 하고 싶은 마음에 방을 또 보러 갔고 그렇게 2년 동안 그 부동산에 1년마다 연락했던 것 같다. 일주일이 흐르고, 결국 결정했다.

수중에 있는 돈을 다 모으고 나머지는 아빠한테 지원받기로.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무리하면서 자취방을 계약했을까 하는 후회도 있다.

그때 당시,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 미쳐있었는지도 모른다.

닥쳐올 앞날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채.


그렇게 방을 계약하기까지는 한 달도 안 걸렸다. 

계약 당일, 전세사기를 피하기 위해 온갖 내용과 자료들을 검색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부동산에 갔다.

몇 달, 아니 몇 년 동안 고민하고 걱정하던 계약진행은 허무하게도 한 시간 만에 끝났다.


그렇게 나의 첫 자취는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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