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시작하고 나만의 저녁 루틴이 생겼다.
바로 저녁에 목욕탕 가기.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루틴이다.
특별하게 대화를 먼저 시도하진 않지만, 간혹 먼저 대화를 걸어주시는 분들이 있다.
바로 목욕탕의 아주머니들.
처음 동네 목욕탕을 꾸준하게 다니기 전, 일주일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 그저 그런 목욕탕이었다.
카운터에 계시는 문지기분들에게 돈을 주고 나만의 열쇠를 받는다.
목욕 용품을 들고 호기롭게 들어서는 순간, 북적북적 시끌시끌한 목욕탕 안.
처음에는 정말 너무 시끄럽고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너무 거슬릴 정도였다.
얼마 가지 않아 그 소음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엄마와 같이 몇 번 가다 보니 내가 엄마한테 하는 소리가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얼마 전 거슬린다고 했던
소음의 한 부분일 줄이야.
어렸을 적 나는 엄마와 목욕탕 가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다.
뜨거운 공기와 나의 살가죽을 벗기는 듯한 엄마의 때밀이 때문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목욕탕 가는 걸 꺼려할 정도로 싫어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엄마의 공포의 때밀이는 사라졌다.
그 순간부터였을까? 점점 스스로 하는 목욕탕 생활에 나름 만족감이 생기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뜨거운 탕에 들어가는 걸 즐기기 시작했고, 저녁마다 목욕탕에 들어가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온종일 지친 몸을 이끌고 따뜻한 물에 풍덩 들어가면 온몸이 사르르 녹는다.
목욕탕을 자주 가다 보면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보면 못 본 척을 하며 고개를 돌린다.
내향적인 나에게는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가 어렵다. 눈이 마주치면 몇 분간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못 봤겠지.. 하고 돌아서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시는 목욕탕의 아주머니들
가끔은 그 누구랑도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우울한 날이 있을 때도 영락없다.
반갑지 않을 줄 알았던 인사를 건네는 순간, 우울했던 감정들이 천천히 사라질 때도 있다.
"아가씨 오늘은 조금 늦게 왔네?"
"네.. 일이 조금 늦게 끝나서요"
"거기 회사는 뭐 그렇게 힘들게 일을 시켜! 그렇지?"
"... 네..ㅎㅎ"
별거 아닌 것 같은 대화로 하루종일 우울했던 감정들이 거짓말처럼 사르르 녹아내린다.
마치 뜨거운 사우나에서 나온 뒤 찬물에 들어가듯.
처음에는 정신없고 시끄럽던 목욕탕의 아주머니들이 오늘은 왠지 반갑게 느껴진다.
반갑지만 때론 여린 감성을 가지고 있는 목욕탕의 아주머니들.
나도 언젠간 저들처럼 살가운 아주머니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오늘도 한 껏 따스해지는 저녁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