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도 주소를 물을 수 있으므로
유치원생 같던 여덟 살들이 2학년 형님 같아진 12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여덟 살 : 선생님, 우리 엄마가 선생님과 차 마시고 싶대요. 주소 알려주세요.
요정샘 : 그래? ...(표정은 평온하게. 머릿속은 초비상)... 선생님은 학교에 살아.
똑똑해진 여덟 살 : 거짓말 마요. 지구에 집 있잖아요.
요정샘 : 그런 건 개인정보란다.
많이 큰 그 여덟 살 : 음, 그럼 요정별 주소 적어주세요.
이 짧은 대화는 곧 1교시 시작과 함께 중단되었다.
‘좋았어! 자연스러웠어!‘
발랄랄랄하고 까르르한 하루가 가고 우리는 내일 또 만날 것을 약속하며 잘 가~ 인사를......
아침의 그 여덟 살 : 선생님, 주소 주세요.
당당한 기세에 밀린 요정샘 : 그래.
나는 외계어가 있다면 어떤 형태일까를 실시간으로 고민하며 열과 성을 다해 나도 처음 보는 나의 요정별 주소를 적어주었다.
당당당당한 그 여덟 살 옆의 여덟 살 : 선생님, 이거 진짜예요? 저도 적어주세요!
당황한 요정샘 : 자, 자, 늦었어. 일단 집에 가자. 내일 적어줄게.
당당한 여덟 살 옆의, 누구에게 배웠는지 똘똘한 여덟 살 : 똑같이 못 쓰니까 보내는 거죠?
진땀 나기 시작한 요정샘 : 아니야. 늦어서 그래. 내일 써줄게.
똘똘하고 비정한 그 여덟 살 : 여덟 살아, 내일 그 쪽지 가지고 와봐. 비교하게!
얘들아, 너희 여덟 살이잖아.
누가 가르쳐서 이리 똑똑한 거니?
어쩌지.
쉽게 쓸걸.
저걸 어떻게 똑같이 써주지?
내면의 자아가 비명을 질렀다.
여덟 살들을 모두 하교시키고 빈 교실 교사용 의자에 널브러져 생각했다. 이 여덟 살들은 나에게 농담 섞인 대화를 건 걸까? 아니면 진지했던 걸까?
다음 날, 당당이 옆의 똘똘한 여덟 살이 나에게 재차 주소를 요청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전자였나 보다. 친밀해진 우리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내밀한 대화. 날 당황시킨 요 당당하고 똘똘한 여덟 살들은 올해 3학년이 되었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6학년 담임인 것을 건너 건너 듣는다면 찾아오겠지? 새것 같은 성능을 자랑하는 저 반짝반짝한 두뇌로 주소를 다시 요구할지 모른다. 혹은 올해도 바득바득 요정쌤으로 살 거라고 외치는 나에게 열세 살들이 주소를 요구할 수도 있다.
주소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
아니다, 넉넉히 복사해 놓을까?
이런 즐거움 때문에 난 요정샘 시나리오를 당최 포기할 수가 없다.
#요정샘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