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운전이 좋아서 2화
93년생인 나는 20살에 운전면허를 땄고, 그 면허는 단순히 신분증의 역할이었다. 내가 제대로 운전을 한 것은 2014년에 호주에서였다. 당연히 내비게이션을 사용했고, 자차가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혼자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길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인터넷의 힘을 빌린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당연히 지도를 볼 줄 모른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무려 54000원짜리 지도책을 구매했다. 난 그냥 지도책을 검색해 아무거나 사면될 줄 알았는데 대부분 어린이용 서적이었으며, 1:120000이니 1:7500이니 하는 축척의 크기도 달랐고, 전국 도로지도부터 관광지 지도 등 다양한 종류의 지도책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나는 축척이 어떤 것이 큰 것인지에 대한 개념도 없었기에 어떤 지도를 사야 내가 편하게 여행을 다닐지 몰랐다. 힘겹게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찾은 지도가 바로 영진 문화사의 영진5만지도였다.
무려 VJ특공대에서 현지조사과정을 방영했다는 엄청난 커리어를 가진 이 지도는 1:120000이나 1:75000 지도보다 더 자세하게 나와있다고 해서 구매했다. 책은 내 생각보다 두꺼웠고, 거대했다. 처음 받았을 때는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책을 펼치면 사진과 같이 몇 페이지에 가면 어느 지역을 볼 수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게 지역별로 묶인 것이 아니니 윗동네나 아랫동네를 보고 싶다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옆동네가 나오니 주의해야 할 것 같다.
나 같은 빡대가리들을 위해 지도와 범례에 대한 설명도 나와있다. 참으로 친절하다. 나는 저기 보이는 고속국도라고 쓰여 있는 고속도로는 달리지 못한다. 나중에 주작하다 걸리면 큰일 나니 절대 타지 않을 것이다.
이 지도는 꽤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관공서는 기본이고, 논과 밭, 심지어 묘지도 표시되어 있다. 밤에는 무서우니 잘 피해 가도록 하자.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페이지를 펼쳐 보았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눈알이 빠질 것 같았고, 컨셉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기에 빠르게 책을 덮었다. 이 이상 지도를 보고 있으면 난 이 프로젝트를 접을 것만 같았다.
21일 토요일. 나는 연습 삼아 가족여행을 이 영진5만지도와 함께 해보려 한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남해까지 가야 하는데 별생각 없이 펜션 위치를 검색해보니 가족들은 다가오는 추석에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미 하겠다고 글까지 써 올린 판에 이제 와서 그만둔다면 너무 가오가 상한다. 그러니 난 내일 남해로 떠난다. 부디 이 글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글이 아니길 바라본다.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