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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Oct 25. 2021

1LAP :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냥 운전이 좋아서 4화

여행을 다녀온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이제야 글을 쓴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그래도 이 프로젝트를 버린 것은 결코 아니었기에 늦게나마 글을 써보기로 했다.


여행은 떠난 후 보다 떠나기 전이 더 힘이 드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바로 목적지! 

어디로 여행을 갈지, 가서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등을 정하는 것은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복잡한 일이었다.

전에도 혼자 여행을 다닌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고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많은 것이 아니기에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했다.

게다가 이걸로 글을 써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재밌거나, 독특한 여행을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도 생겨 여행지를 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방에 누워 한참을 고민하다 우연히 행거에 걸려 있던 전역복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다!’ 싶었다.

나는 강원도 인제의 GOP에서 군복부를 했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군복에는 다양한 패치들이 존재하는데 그중에 GOP에서 근무를 했다면 최전방 수호병이라는 것을 알리는 호랑이가 새겨진 동그란 패치를 달 수 있었다.

이걸 부대에서 따로 나누어 주는데 코로나로 인해 휴가를 자주 못 나가기도 했고, 나가서는 노느라 까먹고 이래서 결국 전역복을 맞추는 날까지 최전방 수호병 패치를 달지 못하고 있었다.

기다리던 전역 날, 군장점에서 전역복을 맞추고 집에 와서 보니 당연히 달려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최전방 수호병 패치가 달려 있지 않았다.

이게 참 별거 아니게 생각될 수 있지만 ‘내가 GOP에서 개고생 좀 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나타낼 수 있는 증거물이기에 언젠가 인제에 가서 꼭 패치를 달겠노라 다짐했었다.

(근데 밖에서 이게 최전방 수호병 패치라고 알아보는 사람은 같은 GOP출신 밖에 없다. 심지어 군복 입고 밖에 나갈 일… 예비군 말고 없다.)

그래서 나는 수원 사는 군대 동기 섭이을 데리고 최전방 수호병 패치를 달기 위해 인제로 떠나기로 했다.


문제의 전역복에는 최전방 수호병 패치가 없다.


이 여행은 약 한 달 전, 2021년 9월 17일에 떠났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하는 섭이는 나의 군대 동기였다. 나보다 한 달 정도 빨리 입대를 했는데 6개월 동기제라서 동기였다. 뭐, 전역한 지금은 형, 동생 하는 사이다.

이 놈은 이등병 때부터 좋은 대학을 다니다 입대해서 그런지 똘똘했고, 선임들이나 간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인사 계원이라는 보직을 맡았었다. 그러니 이 놈은 GOP 섹터를 제대로 올라 본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한 마디로 무늬만 GOP출신이라는 거다 ㅋ.

녀석에게 여행의 컨셉에 대해 말해주니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부쩍 나를 귀찮게 했다.

비용도 내가 부담할 것이고, 운전도 내가 할 것이니 너는 그냥 간간히 지도만 좀 봐주면 된다.라고 했지만 계속 문자를 보내 ‘내가 뭐 준비해갈 거 있어?’라든지, ‘나 지도 볼 줄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라든지, ‘미리 길 공부를 해갈까?’ , ‘길 잃으면 어쩌지?’ , ‘그날 올 수 있는 거지?’ 같은 개똥 같은 소리를 해댔다.

원체 꼼꼼하기도 하고, 군생활도 FM으로 하던 놈이라 사서 걱정을 하는 스타일인 것은 알았지만 괜찮다고 말해도 전 날까지 저런 소리를 해대니 그냥 혼자 갈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남해에 갈 때 코-드라이버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데려가기로 했다.


출발지는 서울 은평구의 우리 집이었다. 녀석이 아침 일찍부터 수원에서 은평구까지 먼 길을 와줬다. 센스 있게 커피까지 사 온 녀석을 보니 전날까지 귀찮게 했던 것은 잊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놈의 걱정은 출발하고서도 계속됐다.

물론, 내가 서울을 빠져나갈 때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녀석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크고, 무거운 지도를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참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녀석이다.


역시 서울의 교통체증은 출근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했다.

9시에 만나 출발한 우리는 11시가 되어서야 태릉을 지나 구리에서 인제로 향하는 46번 국도를 탈 수 있었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춘천의 닭갈비 집이었다. 인제는 딱히 먹을 것이 없었고, 46번 국도가 춘천을 지났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닭갈비를 먹기 위해서는 46번을 타고 가다 중간에 잠깐 빠져 춘천으로 들어가야 했다.

가게와 가장 가까운 출구로 빠져나가기 위해 섭이 옆에서 열심히 지도로 경로를 추적하고 있을 때 도로 옆에 있던 세계 주류마켓을 지나쳤다.

나도, 섭이도 술을 좋아했기에 배가 고팠지만 잠시 구경하고 가기로 하고, 차를 돌려 주류마켓으로 향했다.


춘천 세계 주류마켓 입구. 황금 동상이 눈에 띈다.


세계 주류마켓은 말 그대로 이런저런 술을 파는 곳이었다. 뭐 옆에 카페도 있고, 레스토랑 같은 것도 있었지만 그쪽은 가보지 않았으니 설명은 패스하는 걸로 하자.

막 들어선 입구에는 다양한 치즈와 안주류 코너가 있었고 그 옆으로 안주들과 잘 어울릴 것 같은 와인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 와인들이 특히나 많아 보였다.



저렴한 와인들부터 세트라고 써져 있었지만 상상도 못 한 가격을 가진 와인들도 있었다. 다른 곳에 있던 술들도 마찬가지였다. 위스키부터 보드카, 전통주까지 무슨 맛인지도 모를 처음 보는 술들이 가격별로 지천에 널려 있었다.


수천만 원이라 적힌 가격표는 내 눈을 의심케 했다.


춘천이나 강원도에 캠핑을 가게 된다면 이곳에 들러 술을 사 가지고 가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온 김에 명절도 다가오니 하니 섭이에게 마시고 싶은 술을 하나 고르라고 했다. 집에 가져가서 부모님과 마시라 고하니 진짜 골라도 되냐며 녀석은 꽤나 당황스러워했다.

뭐 대단한 술을 사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 봤자 잔이 들어있는 패키지로 5만 원짜리 위스키를 사줬다. 이런 곳에 오면 빈손으로 나가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 집에서는 술을 거의 안 마셔서 난 살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잘 먹었다고 문자가 오니 잘 사줬다 싶다.


이게 가장 사고 싶었다.


기분 좋은 쇼핑을 마치고 다시 되돌아온 길을 돌아가 46번 국도를 빠져나갔다. 출구를 놓치면 길을 잃을 수 있었기에 우리 둘은 초집중 상태였다. 다행히 코-드라이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섭이 덕분에 출구를 무사히 빠져나왔고, 어렵지 않게 우리가 가려고 했던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철판 닭갈비를 판다.


평일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가게는 한산했다. 배가 많이 고팠기에 곧바로 닭갈비 3인분을 시켜 미친 듯이 입에 넣었다. 난 춘천에서는 철판 닭갈비보다 숯불 닭갈비를 먹는 것을 더 선호하지만 녀석이 철판 닭갈비가 먹고 싶다고 해서 먹었는데 맛있었다.

철판 닭갈비는 마지막 볶음밥까지 먹는 것이 강호의 도리지만 그것까지 먹으면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 같았기에 과감히 볶음밥은 포기했다. 글을 쓰며 되돌아보니 볶음밥이 먹고 싶다.


3인분이다.
맛이 꽤 좋다.


잔뜩 부른 배와 함께 나의 아방이는 다시 힘차게 출발했다. 최종 목적지인 인제 원통 터미널에 가기 위해 다시 46번 국도에 올랐다.

한 개의 국도만 잘 타고 가면 목적지에 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표지판을 무시한 채 무작정 직진을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중간중간에 다른 국도나 지방도로 빠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한 번 실수해서 조금 돌아오기도 했다.

우리 위로는 맑고 푸른 하늘이, 옆으로는 소양강이 눈에 보였다. 사진을 찍고 싶은데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달리던 그때 지도를 잘 보고 있던 녀석이 소리를 쳤다.


“형, 옆이야!”


녀석의 외침에 나는 반사적으로 핸들을 틀어 분기점에서 빠져나갔다. 이놈의 말에 깜짝 놀랐던 나는 차의 속도를 줄이며 맞게 온 것인지 확인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녀석이 길을 착각한 것이었다. 결국 눈앞에 보이는 공터에 차를 세웠다.

우리가 차를 세운 곳은 소양강 꼬부랑길에 있는 전망대 같은 곳이었다. 섭이는 괜히 눈치가 보이는지 사진 찍고 가자고 일부러 그런 거라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댔다.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당일치기로 계획했던 여행이었기에 조바심이 나기는 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진이나 잠시 찍고 가기로 했다.

여기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섭이는 사진을 더럽게 못 찍는다는 거였다.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잔소리 좀 들을 것 같다.


맑은 하늘과 소양강의 환상적인 조합
인제 말고 여기서 놀고 싶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짧은 소양강 구경을 마치고 다시 출발한 아방이는 빠르게 달려 최종 목적지인 원통 터미널에 도착했다. 왜 전역한 예비군들이 자기가 복무했던 지역에 가기 싫어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기분이 굉장히 별로다…


휴가 복귀하던 날이 떠오른다. 기분이 좋지 않다.


곧바로 챙겨 온 전역복 상의를 챙겨 군장점에 가 빠르게 패치를 박아 넣었다. 드디어 나의 전역복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장인의 손길.
이거 하나 달자고 인제까지 왔다...


여기까지가 사실상 이번 여행의 마지막이었다. 이다음에 카페 하추리라는 곳에 갔는데 여기를 갈 때에는 내비게이션을 보고 갔으니 말이다.

하추리마을에 위치한 카페에는 하추리 특산품인 서리태크림을 넣은 라떼도 팔고, 다른 특산물들도 판매하고 있었다. 주차장도 넓고, 개성 넘치는 분위기를 가진 곳이니 인제스피디움에 가시거나 하는 분들이라면 들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체험관도 존재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곳이 카페다.
야외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듯하다.
서리태크림이 들어간 시그니처 메뉴 하추커피.
내부도 이쁘다.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켰다. 이 위대한 발명품은 참으로 편리하고 좋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도 느꼈다. 수원에 사는 섭이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점점 막히기 시작했고, 결국 삼성동에 녀석을 내려주었다.

내 부탁에 아침부터 서울까지 와서 하루 종일 조수석에서 고생한 녀석에게 이번 여행이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여행은 시간을 내기 쉽지 않아 당일치기로 다녀와 아쉬움이 좀 남았다. 다음 여행은 1박 또는 2박으로 다녀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어디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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