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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Nov 09. 2021

2 LAP:차박,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냥 운전이 좋아서 5화

코로나19가 터진 후 세상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비대면 생활이 지속되면서 다양한 비대면 사업들이 미친 듯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차박도 그중 하나였다. 이것의 유행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해외여행의 단절로 인한 국내여행 수요의 증가와 비대면과 힐링을 이유로 캠핑이 대세가 되었고, 여기에 이동의 편리함이 더해져 차박이 대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유행하는 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일까, 나도 차박이 하고 싶었다. 군대에서 유튜브로 캠핑과 차박에 관한 감성 터지는 영상들을 많이 봤었는데 이 때문에 전역 후 버킷리스트에 캠핑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캠핑은 생각보다 도전하기 쉽지 않은 취미였다. 캠핑용품의 종류와 가격은 너무 많거나, 비쌌고, 당장 기본 품목들을 구비하는 것도 여유롭지 않았다. 또, 이 취미가 나에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구매하기는 더더욱 꺼려졌다.

그럼에도 나는 캠핑이나 차박이 너무 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캠핑은 용품이 없어서 못하지만 차박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에게도 차와 이불은 있었다. 그래서 나는 11 6 토요일에 청송으로 떠났다.


으윽, 지도만 보면 토할 것 같다.


청송은 나에게 너무나 낯선 도시였다. 청송이라는 단어에 생각나는 것은 청송교도소가 전부였다. 이런 도시에 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것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한 게시글 때문이었다.

유튜브를 캡처해서 올린 게시글에는 청송군에서 모두가 기피한다고 여겨지는 교정시설의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교정시설이 새로 들어옴으로써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기에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교정시설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구나 하면서 넘겼던 것이 어디를 여행하면 재밌을까 싶어 고민하다 문득 떠올랐고, 인구가 3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이 도시에 볼거리가 있나 싶어 검색해보니 나름 유명한 관광지가 있기에 이번에는 청송으로 떠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서울이 아니라 광주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일이 있어서 본가인 광주에 일주일 정도 내려가 있었다가 서울에 올라가는 길에 청송에 들리는 일정이었다.

서쪽에서 동쪽까지 가야 했고, 인제에 갔을 때처럼 한 개의 국도만 쭉 타고 갈 수 있는 노선을 찾지 못한 나는 아침 일찍 출발할 계획을 세웠다. 늦어도 10시쯤? 하지만 전 날 마신 소주들은 나의 아침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결국 나는 12시가 되어서야 차에 시동을 걸 수 있었다.

내가 지도를 볼 줄 모르는 것인지, 숙취 때문에 생각이 짧아져서 인지 모르겠지만 난 아무리 지도를 보아도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이번에는 지도가 아니라 표지판을 보고 도시를 건너가자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광주에서 담양을 거쳐 순창, 남원, 함양을 거쳐 거창까지 갔다. 이때까지는 나름 도시를 통과하는 계획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바로 옆 도시를 향해 가는 것이었고, 도시도 작다 보니 표지판에 다음 도시로 향하는 방향이 잘 표시되어 있었기에 종종 멈춰서 지도를 보기는 했지만 크게 헤매지 않았다.


남원 어딘가에서.
거창을 빠져나가면서.


거창의 한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해장까지 마친 나는 다시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거창에서 성주로 향했다. 이쯤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목적지였던 청송의 주산지 주차장 옆으로 31번 국도가 지났기에 동쪽으로 이동해 대구와 영천을 지나 31번 국도에 올라탈 것인지, 아니면 구미를 지나 군위까지 간 후 동쪽으로 이동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성주에 다가가면서 고민하던 동쪽으로 이동한 후 31번 국도에 가까이 가는 것이 목적지에 좀 더 빠르게 도착할 것이라 생각해 대구로 향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최악의 한 수가 되었다.

대구에 진입했을 때가 오후 6시 정도였는데 토요일 저녁 6시는 길이 많이 막힌다는 것을 전혀 계산에 넣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대구에 들어오지 표지만은 어디 동네로 가는 방향만을 보여줄 뿐 내가 원하던 영천으로 가는 표지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갈 길을 잃었고, 정체 속에서 하염없이 직진만 할 뿐이었다.


계속된 직진은 날 경산으로 이끌었다. 원했던 동쪽으로 왔지만 지도를 보니 경산은 대구보다 조금 남쪽에 위치해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청송과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고는 물과 거창에서 먹은 컵라면이 전부였기에 배도 고팠고, 대구에서의 정체로 인해 피로가 더욱 쌓였기에 영남대 롯데리아에 주차해 햄버거로 저녁을 때웠다.

지금쯤 청송에 도착해 챙겨 온 캠핑의자에 앉아 스타벅스 쿨러에 넣어 둔 맥주를 마시며 여유와 낭만을 즐기고자 했지만 현실은 롯데리아 햄버거였다. 참 서글펐고, 왜 이딴 컨텐츠를 기획해서 사서 고생을 하는지 과거의 내가 참 미운 순간이었다.

햄버거를 먹으며 어떻게 가야 할지 다시 계획을 세웠다. 영남대에 있었기에 지도에서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영천으로 넘어간 후 35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동쪽으로 빠져서 청송으로 가는 계획을 세우고 다시 힘내서 출발했다. 이때 시간은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런 저녁을 원한 게 아니었다.


난 산이 싫다. 군 복무를 산속에서 해서 특히나 싫었는데 이번 여행길 덕분에 더 싫어할 예정이다. 영천에서 청송까지 가는 길은 더욱 험난했다. 35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보니 점차 민가의 수들이 줄더니 어느새 어두컴컴한 산 길을 달리고 있었다. 간혹 맞은편에서 차들이 지나가긴 했지만 주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고, 그럴수록 더 초조해 갔다.

한 번은 길을 잘못 들었는데 가로등도 하나 없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지도에서 무슨 마을 쪽으로 가야 했기에 xx마을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만 보고 우회전을 했더니 칠흑 같은 암흑만이 나를 반겨 주었다. 무서움 반, 신기함 반으로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차를 잠깐 멈추고 호기심에 라이트를 꺼 보았는데 정말 지옥에 온 줄 알았다.


나... 너무... 무서워...


군대에서 야간에 산을 탈 때에도 월광 덕분에 사리분별 정도는 가능했지만 이 어둠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둠이었다. 소름 끼치게 무서웠던 나는 재빨리 지도를 확인하고 차를 돌려 그 길을 빠져나왔다.

다시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가고 있자니 시간은 아홉 시가 다 되어 갔고, 지도로는 짧아 보였던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12시부터 운전을 계속했으니 피로도 극심했다. 결국 나는 영천시 자양면에서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오후 8시 51분, 내비게이션에 주산지 주차장을 검색했다.


내비게이션으로 1시간이었으니 지도 보고 갔으면 2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한 시간을 더 달려 드디어 주산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후 10시였다. 밤 길을 달리며 무서운 상상을 많이 해서인지 주차장에서 혼자 차박하는 것도 무서웠지만 다행히도 주차장에는 나 말고도 차박을 하는 차량들이 있었다. 그 차들은 모두 SUV였다.


드디어 도착한 청송. (차가 없어 잠시 정차 후 얼른 찍었다.)
차박은 SUV로 하는 것.


내 계획은 저녁을 먹을 때쯤 도착해서 캠핑의자에 앉아 맛있는 안주와 맥주를 먹으며 독서를 하는 그런 감성 터지는 밤을 보낸 계획이었지만 10시간 동안의 운전으로 피로가 쌓은 내 몸은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재빨리 양치질을 마치고 조수석을 뒤로 눕혀 잘 공간을 마련했다. 이불을 반으로 접어 침낭처럼 만들고, 베개를 베니 나름 포근한 느낌이 들고 괜찮았다. 하지만 조수석으로 만든 잠자리는 큰 단점이 있었다. 바로 허리 통증이었다. 자세를 이리저리 돌려 보아도 완벽하게 편안한 잠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요즘 차박의 유행으로 인해 큰 SUV의 수요가 부쩍 늘었다더니 그 이유를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독서는커녕 활용도 못해 본 스타버스 쿨러와 할리스 랜턴을 옆에 둔 채 축구를 보다 잠을 잤다.


광주에서 청송까지 388km를 주행했다.


새벽에 두 번 정도 깼는데 춥고, 허리가 아파서였다. 다음 차는 SUV로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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