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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Nov 14. 2021

4 LAP:심장이 뛰는 한 광주 답게.

그냥 운전이 좋아서 7화

21전 6무 15패. 내가 사랑하는 광주 FC의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한 11년간의 상대전적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난 11년 동안 단 한 번도 포항을 이기지 못했다.

한 번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 이긴 경기를 극장골로 비기거나 역전당하기를 반복했었다. 리그 최강이라는 전북이나 울산도 이겨봤는데 유독 포항 앞에서는 종료 휘슬과 함께 무너지곤 했다.

2021 시즌 단 세 경기를 남겨두고 리그 꼴찌 12위에 위치해 있는 광주는 11년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포항을 그들의 홈구장 스틸야드에서 상대해야 했다. 이 쉽지 않은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나도 청송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곧바로 포항으로 향했다.


포항의 홈구장 스틸야드는 1990년 11월 1일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전용구장이다. 15,521석의 좌석을 가진 이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포항 스틸러스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 클럽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주 가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전용구장답게 스틸야드는 축구를 보기에 굉장히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수도권에 살았기에 거리가 멀어 쉽사리 가보지 못했었는데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었기에 꼭 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카페 백일홍에서 경기 시간에 늦지 않게 빠져나와 차에서 지도를 펴 ‘축구 경기장’이라고 적힌 곳에 표시를 해 두고 그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청송에서 포항까지 가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냥 31번 국도를 타고 쭉 가면 포항 시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포항에 놀러 온 적이 있었고, 그때 포스코를 지나가 본 기억이 있어서 크게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리터 당 1800원이 넘는 고급유 같은 일반유를 한가득 넣고 포항에 들어서니 길이 조금씩 막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경기 시작 전에는 도착할 것으로 보여서 나의 한껏 여유를 부리며 운전을 했다.

킥오프 15분 전쯤 경기장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이 너무 없었고, 보통 경기장 근처에는 그 구단과 관련된 포스터나 현수막이 한 두 개쯤은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것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차까지 마치고 나서야 난 굉장히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도 온 적은 없지만 경기장은 포스코 부지 내에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지금 내가 있는 경기장은 포스코 부지 안이 아니라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난 스틸야드가 아니라 포항 종합운동장으로 와버렸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당황했지만 다행히 스틸야드와 종합운동장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재빨리 주차장을 빠져나와 스틸야드에 도착하니 경기 시작 5분을 남겨 두고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축구는 전용구장에서 보는 게 최고다.


시즌 내내 말이 많던 원정팬 입장 금지 규정이 사라지고 정상적으로 입장이 가능했기에 미리 예약해 둔 원정석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경기장이기에 다소 낡았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축구를 즐기기에는 최적의 시야를 갖추고 있었다.

강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승리가 필요한 광주를 응원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원정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서로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앞으로 두 시간 동안은 우리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광주를 응원할 든든한 동지들이었다.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


최근 광주는 경기력은 좋은 편인데 이기지 못해서 곤혹을 치르곤 했었다. 이 날 경기도 평소처럼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전반전에 포항의 수비수 그랜트가 퇴장을 당하고,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광주의 수비수 알렉스의 환상적인 중거리슛이 득점으로 연결되며 광주가 1점 앞선 채 전반전이 끝이 났다.

상대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우위, 1골 앞선 스코어,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는 선수들과 팬들의 간절함까지 더해졌지만 전반이 끝나고도 나의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바로 전 경기였던 FC서울과의 경기에서 나온 전반전을 3:0으로 이기고 있다가 후반전에 4골을 때려 맞고 역전을 당한 팀이 바로 우리 광주 FC였기 때문이었다.

신은 믿지 않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제발 우리 팀 좀 살려 달라고.


광주의 애물단지 조나탄이 여름 이적 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경기이기도 했다.


모든 광주 팬들의 염원이 통해서일까? 후반전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광주의 공격수 헤이스의 중거리 슛이 다시 한번 포항 골대를 출렁거리게 만들었다. 11년 만에 포항을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종료가 다가오던 시점에 포항의 강상우가 1골을 넣어 설마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그대로 경기가 끝이 났다.   번도 포항을 이기지 못하던 광주는 22 경기만에 적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너무 좋은 위치에 앉아서 중계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서울까지 가는 길이 한참이기에 경기가 끝나자마자 승리의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아침 일찍 일어났기에 서울로 올라가면서 졸음운전을 할까 걱정했지만 승리에 취한 나는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운전하는 내내 그 흥분을 감추기 힘들었다.


이겼다.


이제 광주 FC는 딱 두 경기를 남겨두고 여전히 꼴찌인 12위에 위치해 있다.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이기고, 다른 경쟁팀들의 결과에 따라 잔류하거나 다시금 2부 리그로 강등될 수 있는 상황이다. 돈도 없고, 팬도 없는 이 불쌍한 팀은 매년 힘겹게 1부 리그에서 버텨내고 있다. 여전히 부족한 점 투성이에 사건사고도 많아 짜증 나게 하는 팀이지만 어쩌겠나, 내가 선택한 팀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지… 제발 강등은 안 된다. 정말로.


광주에서 청송, 포항을 거쳐 서울까지 약 900km를 주행했다. 지도를 보는 것은 참 짜증 나고,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여행이 끝나고 나면 재밌다는 생각이 더 크다.


운전은 재밌다.


다음에는 어디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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