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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Jun 09. 2021

서른

셋이 모여 202! 2화

나에게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뀌었을 때 처음 만났던 우리는 6개월 뒤면 다시 한번 앞자리가 바뀌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곧 서른 살이 된다.


그동안 20대를 지내오며 상상했던 나의 서른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메이저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멋있는 웹툰 작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을 코앞에 둔 지금. 나는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생의 큰 숙제였던 군대를 29살이 되어서야 전역했고, 몇 번의 연재를 했지만 여전히 무명작가 생활을 하는 중이다. 모아 놓은 돈도, 앞으로 돈을 벌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의 내가 너무 싫다.

그렇다고 내가 주변에서 성공에 대한 압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 친구들도 나에게 돈에 대해서, 현실에 대해서 압박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응원을 해주는 것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뚜렷한 성과를 낸 것은 아니지만 다들 나를 믿어준다.


누군가는 요즘 세상에, 인생은 60부터라는 세상에 서른이라는 나이를 앞두고 이런 생각은 하는 내가 참으로 구시대적인 사람, MZ세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재산은 없어도 직업이 있는 사람이 말하는 서른과 당장 돈을 벌지도 못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가진 무명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의 서른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적어도 서른이라면 작가로서 스스로 밥벌이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던 나는 군입대 전, 작가 생활을 포기하려 했었다. 서울로 이사를 한 후 2년간 투잡 생활을 이어가던 나는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우리 셋은 한 달 벌어 한 달 생활하기도 벅찼다.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린 나는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아보려 했다. 하지만 서울의 좋다는 정신과 상담료는 내 예상보다 비쌌다. 결국 나는 욱작가와 썸머에게 모두 포기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광주로 내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나를 붙잡아준 것이 욱작가와 썸머였다. 그들은 나의 말에 함께 서울에 와줬고 끝까지 나를 믿어 주었다. 내가 좋은 작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작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이 암울한 현실에 짓눌려 우울해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해오던 그림과 더불어 요즘에는 글을 쓰고 있다. 지금 보시는 글과 같은 에세이, 소설, 웹소설까지 다양한 글에 도전해보고 있다. 여기에 욱작가와 썸머 두 친구와 함께 202 스튜디오로서 선보일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을 내년까지 기획해 두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마음 한 켠에는 조바심과 압박감이 자리하고 있다. 좋아하던 게임을 켜면 양심이 찔려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끈다. 잠이 들면 알람 소리도 못 듣던 내가 예상보다 조금이라도 오래 잔 날은 하루 종일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스트레스를 주고는 한다. 아직까지 결과물을 손에 쥐지 못해서 인 것 같다.


입대 전에도 그랬고, 입대 후에도 마찬가지인 것을 보면 이런 마음은 내가 연재를 따내고,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전과 같이 현실에 짓눌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압박감과 조바심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을 길러보려 한다. 그런 마음으로 서른을 맞이할 수 있는 한층 더 성숙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전히 그 방법은 찾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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