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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발 Jun 28. 2021

전시회(2)

셋이 모여 202! 5화

내가 군대에서 한창 뺑이 치던 작년 봄. 썸머와 통화를 할 때 썸머는 여름쯤에 전시회를 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코로나19로 인해 보기 좋게 날아가 버렸다.

열심히 준비하던 전시회가 무기한 연기되자 썸머는 동력을 잃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202의 첫 프로젝트로 우리의 세 번째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썸머가 어느 날 마음에 드는 전시회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을지로에 위치한 감각의 제국이라는 바 위층에 있는 옥탑방이었다. 처음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이런 곳에서 전시회를 한다고?’라는 생각뿐이었다.

직접 전시회장을 찾아갔을 때에도 이 생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너무나 낡았고, 협소했다. 하지만 썸머의 개인전이니 그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회는 썸머의 개인전으로 기획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썸머가 소속되어 활동하는 EVAW(이보라 부른다.)라는 팀과 함께 전시회를 열고자 했다. 난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썸머가 202보다 다른 곳을 더 신경 쓰는 것 같은 느낌도 싫었고, 콘셉트가 명확했던 썸머의 작품들에 다른 것이 추가되면 전시회가 비빔밥이나 부대찌개가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역대 전시회(겨우 세 번 했다.) 중 가장 큰 예산이 들어갔다. 썸머의 작품과 굿즈뿐만이 아니라 이보의 작품과 굿즈까지 202에서 투자했다.(라고 쓰고 욱작가가 투자했다고 읽느다.)


나는 내 생각보다 나의 영역에 남이 침범하는 것에 관대하지 않았다. 도무지 우리의 전시회에 다른 팀의 전시를 왜 우리의 돈(다시 말하지만 욱작가의 돈이다.)으로 남 좋은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내 눈과 생각에는 썸머의 작품과 전시회의 질을 떨어트리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이보의 편을 더 들어주는 썸머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전역을 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첫 프로젝트이다 보니 욕심이 났다. 나는 썸머의 그림을 참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썸머의 그림을 본다면 모두가 그의 그림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기에 다른 것이 이것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에게 수많은 분쟁을 안겨주었다. 장소 섭외의 문제, 이보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 돈 문제까지. 결국 나는 터져버렸다. 그동안 쌓였던 욱작가와 썸머에게 서운했던 개인적인 일까지 터트리면서 서운함을 토로했다.

지금 생각하니 진작에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 문제였다. 고맙게도 욱작가와 썸머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해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 역시도 내가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들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세 번째 전시회 'all things gliter'.
EVAW와 함께 하다 보니 포스터가 무려 세 장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시회를 열었다. 외주 때문에 전시회 설치도 도와주지 못했다. 전시회장에 가보니 열악한 공간에 나름대로 잘 채워 넣었다는 느낌이었다.

이번 전시회 오픈날에 오시는 분들에게는 감각의 제국에서 음료 1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쿠폰을 드렸다. 이건 내가 냈다. 그러니 생색 내기 위해 이곳에 쓴다.


전시회장의 가장 넓은 공간은 썸머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매번 느끼지만 썸머의 그림은 디지털이 아니라 프린트가 되어 액자에 걸려 있을 때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나는 도무지 따라 할 수 없는 디테일이 살아 있는 그림들을 보면 내 옆에서 작업을 하지만 어떻게 이런 것들을 그려 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사진으로는 그림의 디테일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나는 저 흑백의 나비가 가장 좋았다.


오랫동안 썸머가 만들어왔던 나비. 그 나비를 활용한 그림들과 수작업으로 만든 조형물까지.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액자였다. 액자의 무게와 낡은 페인트 때문에 제대로 벽에 부착되지 못한 몇 개의 그림이 바닥으로 떨어져 액자가 파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어쩔 수 없이 그림만 덩그러니 걸려 있는 그림들이 몇 개 있었다.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였지만 이런 것들도 미리 대비해야겠다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썸머가 수제작으로 만든 조형물.
시간이 부족해 아쉽게도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 다음에는 더 좋은 작품으로 탄생하길 바라본다.


이번에는 디지털 액자라는 것도 사용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을 참 힘들어했던 썸머였지만 디지털 액자에서 움직이는 그림들을 보니 고생한 보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디지털액자에는 썸머의 그림과 EVAW의 그림이 함께 전시되었다.


원래 오픈날에 하려고 했던 공연은 비 소식 때문에 미뤄져 한 주 늦게 했다. 감각의 제국에서 공간까지 흔쾌히 내어 주셔서 더욱 멋있는 공연이 되었다.


감가의 제국에서 공간을 내어주신 덕분에 더 멋진 공연이 되었다.


역대 가장 많은 돈을 투자했고, 가장 많은 분쟁을 야기했던 전시회가 며칠 전 끝이 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최전선에서 고생했고, 전시회 중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무더운 전시회장을 지켰던 썸머에게 고맙고, 고생 많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큰돈을 우리를 위해 흔쾌히 투자했던 욱작가에게도 감사하다. 까탈스러운 나와의 커뮤니케이션에 고생했을 이보에게도 고생했다는 말을 전한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이번 전시회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여전히 우리는 미숙하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다음 프로젝트 때에도 이번처럼 많이 투닥거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때도 우리는 셋이 함께일 것이니 문제없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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