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제주 한달살기 29일차_2026. 2. 9.(월)
조카가 내일 먼저 떠난다.
우리 셋은 송악산 둘레길을 걸었다.
여러 번 온 길이지만 늘 처음 같다.
작년 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끝내 오지 못했던 길이었다.
제주대에 다니는 조카도 이 길은 처음이라고 했다.
다시 오면 또 걸을 곳이지만 오늘은 조금 더 천천히 걸었다.
윤슬이 번지는 바다, 풀을 뜯는 망아지, 말없이 걷는 사람들.
걷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물이 좋을까.
호수, 강, 바다.
물이 보이는 곳을 자꾸 찾는다.
운동도 수영을 좋아한다.
뉴질랜드에서 차가운 호수에 몸을 띄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깊은 물 위에 등을 대고 누워 하늘을 보던 순간.
잔잔한 물을 보면 가끔 그 안에 들어가 가만히 떠 있고 싶어진다.
둘레길을 돌고 ‘루핀’ 카페에 갔다.
지난번 초등학교 친구들과 왔던 곳.
티라미슈를 다시 주문했다.
잠시 앉아 있다가 조카의 자취방으로 갔다.
언니는 말없이 딸의 방을 정리했다.
이불을 바꿔주고, 작은 주방을 정리하고, 욕실을 청소한다.
조카는 작년에 제주대 약학과로 편입했다.
그 전 몇 해 동안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작년 1월, 내가 제주에 머물던 동안 조카는 시험을 보러 내려왔고 우리는 이틀을 같이 보냈다.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엄마가 다정하게 이름을 자주 불렀던 손녀였다.
차 안에서 <나의 아저씨> OST가 흘러나왔다.
조수석에 앉은 조카가 창밖을 보며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래는 계속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