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하연 Jan 02. 2023

버스 기사님이 알려 준 팁




12시 늦은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서울로 가는 사람들의 택시는 잘 잡혔는데 반대편인 우리 집으로 가는 택시는 잘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정류장의 전광판을 보니, 광역버스 한 대가 남아있었다.     

14분을 기다려야 했다.     

 

추운 날씨, 손을 호빵처럼 호호 불어가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마음이 초조했다. 몇 겹의 검은색이 더해진 듯 밤이 깜깜했기에, 혹시 버스가 나를 못 보고 지나칠까 긴장을 했다.      


도착까지 3분.

머릿속으로 버스 기사님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야 하나 고민을 거듭했다.     



나는   마지막 버스를 타야 했다. 다음 기회는 없었다. 그런 결연한 마음으로 팔로 깃발을 휘젓듯 움직였다. 다행히  앞에 기다리던 빨간색 버스가 멈추어 섰다. 급한 마음에 계단에 다리를 리려는데, 기사님이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타려고 했다.     


고깃집 향기

담배 냄새

술 냄새

향수 냄새가 차례대로 하차했다.

인간 향수들의 향연이었다.      



“이제 타세요. 근데 서울 가는 거 아니시죠?”

“네. 아니에요.”     



종점으로 가는 차였기에 내가 잘못 탄 건지 걱정이 되신 모양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세 정거장뿐이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내릴 곳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종종 반대에서 타야 되는 분들이 잘못 타더라고요. 그래서 늦은 밤 타시는 분들한테는 안내를 드리고 있는데, 어떤 분들은 내가 알아서 타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정말요? 술 취하신 분들인가요?”

“아니요. 맨 정신에도 그래요.”

“승객이 잘못 탔을까 봐 걱정해서 그런 건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나 봐요.”

“그러니까요. 종점 가는 버스인데, 막차라 타고 나올 버스도 없어서 알려준 건데...”     


호의가 호의로 전해지지 않는 순간도 있었다.



밤을 뚫고 가는 버스 안에서 아저씨는 내게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음번, 밤에 버스를 잡을 때는 핸드폰 화면을 켜서 손을 흔드세요. 밤이라 잘 안 보여서 혹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어요.”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꿀팁이네요. 감사해요. 버스 지나치면 추워서 큰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순간 기사님의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다음 정류장에서 한 손님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정말 깜깜해서 그림자처럼 보일 뿐 식별하기 어려웠다.      

세 정류장의 시간이었지만 진한 대화를 나누었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얻을 수 있는 만남이었다. 기사님의 좋은 팁을 언제 또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두운 밤의 외출은 흔하지 않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식당에서 뭘 본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