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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an 05. 2023

국밥집에서, 외국인 직원과 할머니의 대화




여행지에서 처음 가보는 콩나물 국밥집이었다. 식당이 깨끗하고 넓어서 들어서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았다. 자리에 앉아 콩나물 국밥 2개와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직원이 주문한 메뉴를 확인했다.


꽁나물 꼭밥 2, 뚜부 찌개 ?”     

“네 맞아요.”     


외모는 전혀 티가 안나도 말투를 통해 외국인임을 아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컵에 물을 채우고, 숟가락 젓가락을 놓는 사이에 시킨 메뉴가 나왔다. 식당을 둘러보니, 혼자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소주 한 병과 국밥을 사이에 놓고 아침부터 삶을 이야기하던 두 남성이 나가려는데, 계산대에서 기다려도 주인이 오지 않자.     


“저 도망가요.”     

라고 농담을 던졌다.     


“도망가려면 조용히 가지, 그렇게 말하고 가는 사람이 어딨 어요?”

주인아주머니가 농담을 받아치며 계산대로 향했다.      



잠시 뒤,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콩나물 국밥 2개 포장해 주세요.”

외국인 직원이 물었다.     

“조리요? 비조리요?”

“네?”

“조리요? 비조리요?”



몇 번의 같은 대화가 반복되었고, 할머니는 직원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했다. 외국인 직원이 외운 단어, 조리, 비조리는 그 외의 말로 풀 수 없는 것 같은 암기된 단어였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할머니께 물었다.


“여기서 끓여 드려요?

집에 가서 끓여 드실 거예요?”     

“집에 가서 바로 먹으려고.”     

직원을 향해

“조리로 해주셔요.”라고 말했다.     



한국어였어도 통역이 필요했다. 조리, 비조리란 단어는 내가 듣기에도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였다. 알아듣는다고 해도 한 번의 생각을 더 해야 했다.

   

큰 금액의 기부를 하진 못해도, 누군가의 어려운 마음을 읽고 작은 도움은 줄 수 있다.     

      

어느 날은, 노브랜드에 장을 보러 갔다가 내 앞의 초등학생들이 아이스트림 두 개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장에서는 카드사용만 가능하다는 것. 두 아이가 손에서 오천 원을 만지작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길래, 내 카드로 결제를 했다. 이모가 쏘는 거라고...     

아이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오천 원을 주려고 했다. 괜찮다고, 우리 딸 친구들 아이스크림 사주는 마음으로 사주는 거라고 했다.

 

지하철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도 꼭 받아온다. 그날 그분의 일의 무게를 한 페이지 덜어줄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받는다. 그래야 빨리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쉴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종종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 그 장소에 내가 있어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움직인다.

     

 어릴 때, 혼자 처음 버스를 타던 날, 버스를 반대방향으로 타서 길을 잃었던 적이 있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고, 여분의 버스요금도 없었서 눈물만 흘리고 있던 내게 한 아주머니가 차비도 주고, 버스 타는 방향도 알려 준 적이 있었다.



몇 십 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면, 그날 내게 베풀던 아주머니의 마음이 떠올랐다.


이제 내가 그 아주머니의 나이가 되었으니,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작은 호의는 형태는 없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 속에서 점점 자라나 다른 곳으로 번져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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