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란다.
아이의 발도 자란다.
얼마 전 아이 운동화를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 성인 운동화의 디자인은 다양한데, 어린이 운동화 디자인은 몇 개 없었다. 키즈코너에 가서 운동화를 구경하고 있는데 점원이 물었다.
"지금 아이가 몇 사이즈 신어요?”
"220이요.”
"키즈용은 220까지 나와서, 이제 어른 코너에서 골라야 해요.”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 것 같아 신이 난 모양이었다.
"어른용 230은 클 것 같은데요.”
"어른용은 220부터 나와서 220으로 신으면 될 것 같아요. 이쪽은 고가 라인인데, 아이들은 발이 금방 자라니까 그보다 아래의 가격대로 고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추천해 준 운동화는 89,000원대였다. 아이의 신발만 커진 게 아니라, 가격까지 커졌다. 지금 신는 운동화는 앞부분에 밴딩처리가 되어있어서 신고 벗기가 편했고, 바닥 창도 부드러웠는데 이번에 아이가 고른 신발은 디자인은 멋스러웠지만 흰 끈이 빼곡히 있고, 밑창도 딱딱했다.
"걸어보니까 어때? 불편하진 않아?”
"좀 딱딱하긴 한데…. 괜찮아.”
지난번에 산 운동화도 불편하다고 두 번 신고 안 신은 적이 있었기에 운동화는 무조건 편해야 했다.
점원이 말했다.
"어른용 운동화는 끈이 있어서 끈을 묶을 수 있어야 아이들이 신을 수 있긴 해요. 아이들 것은 고무줄 끈이라서 발을 넣으면 쑥 들어가는데, 어른 것은 손이 좀 야무져야 하죠.”
아이의 발은 어른처럼 컸지만, 손은 아직 작고 서툴러서 리본 묶는 법을 몰랐다. 키즈용에서 어른용 운동화로 넘어갈 때, 리본 묶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내겐 너무 당연한 리본 묶기가 아이에게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좀 더 고민해 보겠다며 매장을 나왔다. 하루에도 신발을 신고 벗을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아이가 끈을 조이고 묶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며칠 뒤, 아이의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둘은 고양이 인형 목에 색색의 리본을 달며 놀았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이가 내게 리본 묶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친구는 리본을 묶을 수 있는데 자기는 묶을 수 없어서 배우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 운동화 끈도 묶어야 하니까, 리본 묶는 법 좀 가르쳐줘.”
빨강 리본을 가져와서 가방 손잡이에 한 번 돌려 매듭지었다.
"왼손으로 리본을 둥글게 말고, 오른쪽 끈을 전에 만든 둥근 리본을 가로질러 한 바퀴 돌리고, 돌린 끈 사이로 같은 끈을 끝까지 빼지 말고 동글게 밀어 넣으면 돼.”
몇 번을 반복했다. 아이는 손이 작아서 리본을 둥글게 마는 것도 놓쳤고, 가장 어려운 코스인 돌린 끝 사이로 동글게 밀어 넣는 것도 헷갈려했다. 그 모습을 보며 리본을 묶는 게 처음에는 이렇게 어렵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몇 번의 연습 끝에 성공하고는 스스로 손뼉을 쳤다. XXL 크기의 웃음을 지으며 폴폴폴 뛰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뭉클했다. 리본이 뭐라고…. 그 후로, 6마리의 고양이 인형 목에 리본을 묶어주고, 내 잠옷 바지의 끈도 리본으로 묶어주었다. 끈만 보면 그 무엇이든 리본으로 만들었다.
배철수의 라디오에서 아이들의 시간은 수많은 처음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지금의 우리는 너무 능숙해서 서툴렀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아이가 리본을 묶는 모습이나 처음 공기놀이를 시작해 공기 알을 자꾸 놓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처음을 떠올린다.
이미 수많은 처음을 지나온 내가, 아이에게 처음을 가르치며 나의 처음을 다시 만난다. 작은 순간들을 통해 지난 시간들을 만져본다.
며칠이 지난 후 아이가 운전면허 자격증이라도 딴 듯, 자신감 있게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운동화 사도 될 것 같아.”
리본을 묶지 못했던 아이가 리본을 묶게 된다.
한 인간이 조금씩 성장하는 것.
부모가 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찬란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