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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Feb 06. 2023

척추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요?

허리디스크

갑자기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처음에는 등이 굽은 사람처럼 걷다가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상체를 들 수 없었다. 두 팔을 버팀목 삼아 가깟으로 상체를 일으켰지만 침대밖으로 몸을 세울 수 없었다. 세수도 힘들고, 허리를 굽혀 쓰레기를 버릴 수도 없었다.


허리통증은 가끔 있었지만 금방 사라졌다.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아픈 적은 없었다.


사라져야 존재를 아는 것처럼 허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척추가 몸을 움직이는 중심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통증이 몰려오면 두려움이 같이 따라왔다. 원인을 알 수 없기에 더 무서웠다.


경미했던 증상이 심해지자 허리통증에 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디스크인지? 신경통인지? 심하면 췌장암의 증상이라고도 했다. 원인을 모르는 증상만으로는 걱정만 커졌기에, 빨리 병원을 찾았다.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의사는 나를 보고 젊기 때문에, 염증이나 일시적 통증일 거라고 했다.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의사이긴 하지만 보자마자 그런 말을 하는 건 편견 같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지만..."


뭐지? 그 말에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


"여기 차트를 보면 다른 척추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되어 있는데, 5번 척추를 보면 간격이 좁죠? 초기 디스크 증상이네요. 종종 아픈 적이 있었나요?"

"생리통이 있을 때에는 한 달에 몇 번씩 아픈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못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어요.

척주 간격을 다시 넓히는 방법은 없나요?"

"네 한 번 좁혀진 건 다시 넓힐 수 없어요. 더 좁혀지지 않게 관리를 해야 합니다.

최근 허리가 아플 만한 상황이 있었나요?"

"장시간 자동차에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긴 했어요."


"허리는 그동안 수많은 이유로 악화되었기에, 사실 어떤 문제로 이렇게 되는지는 알 수 없어요. 디스크초기 증상은 너무 염려 안 하셔도 돼요."

"이렇게 아픈데요."


의사의 말이 믿기 어려웠다.


"척추의 입장을 생각해 보세요. 이제껏 아무 일 없듯 잘 생활하다가 며칠 무리해서 아파져서 병원에 와서는 초기 디스크라고 하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왜 이제 와서 호들갑이야, 이럴까요?."


"그니까 너무 겁먹지 말고, 평소 생활하는 대로 하면 돼요. 아프면 좀 쉬고, 물리치료받고, 약 먹고 하면 크게 신경 쓸 일 아니에요."


"곧 여행도 가는데, 갈 수 있을까요? 이렇게 아파서는 취소해야 할 것도 같아서요."

"아유~ 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에요. 며칠 쉬면 괜찮아져서 일상 생활해도 돼요."


나는 이렇게 아픈데 신경 쓰지 말라니?

척추의 입장을 생각하라니?



내 입장도 생각해 주세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남의 일이라고 너무 가볍게 여기는 태도 같았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초기 증상에서 치료할 것은 없기 때문에 너무 큰 두려움을 불러와서 무리하게 걱정하지 말라는 뜻 같았다. (다소 혼내는 듯한 말이라 당황했지만)


통증이 있는 나에게는 의학적 지식이 없다. 내 몸이지만 내가 제어하지 못한다. 반면 의사들은 통증은 없지만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그들의 몸이 아니기에 내 통증을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환자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걱정을 해소시키는 말이 최선인 듯 보였다.



처음에는 나와 의사의 감정 간극이 있어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고통의 원인을 어느 정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이제 척주를 잘 다독여야 했다. 척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허리에 무리가 가는 자세는 앉을 때였다.


그동안은 오랜 시간 쭉 앉아 있어도 자각 없이 계속 앉아 있거나, 불편한 자세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 결과 이렇게 된 것이다. 아프고 나서야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젠 자주 스트레칭을 하고 척추에 하중을 많이 주는 행동은 피해야겠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주방의 그릇장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서서 쓰는 중이다.

그동안 관심도 없던 척추의 안녕을 생각한다.


척추가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말해도 모르더니, 이제야 날 대접해 주는구나."

"미안해. 날 떠나지 마. 내가 더 잘할게.우리 쭉 건강하게 잘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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