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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an 24. 2023

설에 효도하는 신발?

설날에 친척이 모이면 다양한 말들이 생겨납니다.



평온한 하루란 밤에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날이라고 했는데, 명절 밤이면 마음에 걸리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음식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말들이 소화되지 못한 채 가슴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매번 명절이면 말들은 수건 돌리기처럼 여러 사람들 뒤에 놓였습니다.


동서 뒤에도

내 뒤에도

아이들 뒤에도 구겨진 수건이 놓였습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얘야 많이 좀 먹어”

“마흔이 넘으니 네 얼굴도 중년의 느낌이 나네.”

“편식하면 못 써. 편식하니까 키가 안 크지. 골고루 먹어”

“둘째는 언제 낳을 거니?”     



슬며시 아이 이야기가 나오면 누군가는 곧 자기에게 올 말을 알아채고 방으로 피했습니다. 명절이 반복되면서 우리에게도 데이터가 쌓여갔습니다. 따뜻한 말을 하는 사람은 늘 따뜻한 말을 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늘 상처 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습니다.

     

일단 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눈에 띄면 말 화살에 맞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희미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지요.           


    

/     




이번 설에 아이가 신고 간 신발이 자꾸 없어졌습니다.      

어머님이 경비아저씨께 요리를 나눠 드린다고 신고, 윗 층 이웃에게 갈 때에도 신었습니다.

남편이 잠깐 차에 두고 온 짐을 찾으러 갈 때에도 아이의 신발을 신고, 작은엄마가 아이들 간식을 사러 마트에 갈 때에도 신었습니다. 현관에 자기 신발들이 다 있었지만, 잠깐 어디를 갈 때면 뒤가 뻥 뚫린 아이의 신발을 신었습니다. 발이 삐죽 튀어나와도 모두들 그 신발만 고집했습니다. 그리곤 다들 한 마디씩 했습니다.    




 


“따뜻하니 너무 좋다.”

“이거 누구거니? 너무 편하다.”

“나도 하나 사야겠다.”     




귀여운 곰돌이 그림이 그려진 털 신발은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신발이 부럽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신발에 쏟아지는 찬사를 설에 모인 사람들에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신발보다 더 소중한 건 사람들이니까요...        



“오랜만에 보니 더 예뻐졌다.”

“간장게장 맛있다. 역시 00 요리 솜씨가 최고라니까.”

“애들 예쁘게 키우느라 고생했네.”

“좋아하는 건, 맛있게 잘 먹네.”

“요즘 일하기 힘들지? 열심히 살아 보기 좋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을 서로 건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머니의 세뱃돈처럼 두둑한 말이 가득 차기를 기대하고, 또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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