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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Feb 18. 2023

미국식 유머 구사하는 떡볶이집

돌고래시장에 갔다.


광명 시장, 의정부 시장, 서문 시장 등 다양한 시장을 가봤지만 이렇게 깜찍한 이름의 시장은 처음이었다. 시장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돌고래 그림이 가득했다.


여기 수족관 아니고, 시장 맞지?


낯선 경험이었다. 그 옆에는 코끼리 시장도 있었다. 일요일에 쉬는 줄도 모르고 방문해서 헛걸음을 한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날짜를 확인해 토요일에 방문했다. 지하에는 반찬, 정육점, 참기름, 쌀, 도넛, 커피, 뻥튀기 등 다양한 음식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동그란 도넛이 패턴처럼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며 안 사 먹을 수 없었다. 식사 후 디저트로 먹을 생각에 꽈배기를 사려고 했다. 가격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작은 꽈배기 3개가 천 원이었다. 한 개에 천 원이 아닌, 세 개에 천 원? 요즘 물가에 놀랄 수밖에 없는 숫자였다.



그 옆에는 마치 쌀이 장롱에 접힌 셔츠처럼 쌓여 있었다. 쓰레기봉투도, 잡곡류도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디스플레이를 보니, 여기 주인은 뭐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주인의 삶의 방식과 철학이 느껴졌다. 그곳에서 뭐라도 사고 싶었다. 둘러보니 유정란이 있길래 하나 구입했다. 신뢰가 갔다.



때깔 좋은 한우집에서도 한 참 머무르고, 반찬가게에 들러 갈치와 닭볶음탕, 오이지를 구입했다. 시장의 국룰 구운 김도 사려고 갔는데, 노트 같은 크기의 김이 아닌, 손바닥 크기의 김이 있었다. 다양한 시장에 가봤지만 그렇게 잘린 김은 처음이었다. 큰 김은 너무 맛있지만, 자를 때마다 싱크대 가득 김가루가 튀고, 가위에도 잔뜩 묻고, 바닥에도 검은 눈이 내렸다. 맛있지만 번거로운 게 구운 김이었다. 그런 불편함을 개선하다니, 배려하는 김을 만난듯 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도시락김의 크기로 자른 김은 한 봉지에 2000원이었다.

큰 김을 소분한 것보다 가격이 비싸긴 했지만 쏙 빼먹기만 하면 되니 살 수밖에 없었다.



시장도 진화하고 있었다.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한 곳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어 좋았다. 장을 본 뒤 출출해져 맛있어 보이는 분식집에 들어갔다. 우리 가족 셋이 딱 앉을 곳이 있어서 일단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메뉴를 고르려는데, 포장손님들까지 몰려와 갑자기 분주해졌다. 아주머니 혼자 일을 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밀려드니 감당하기 버거워 보였다. 요리하랴 주문받으랴 정신이 없었다. 어떤 손님이 먼저 왔는지 알 수 없어 순서도 엉켰다.


우리 뒤에 온 손님이 먼저 주문을 하자 초조해졌다. 언제 치고 들어가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때

옆 테이블의 두 청년이 다 먹고 계산을 했다.


"얼마예요?"

"17만 원이요."

(둘 중 한 명은 놀라며)

"17만 원이요? (유머를 다큐로 받아들임)"

물었고, 옆의 친구는 단박에 알아듣고

"요새 물가 많이 올랐네요."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는 받아치는 친구를 보며 실력이 보통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유머를 짰다.

남편은 우리 나갈 때,

"130만 원 드리자."고 말했다.



아주머니 혼자 일하기에는 벅차 보였는데, 잠시 뒤 아저씨가 들어왔다. 이내 분식집은 평화를 되찾았다.

아주머니는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유머를 이어갔다. 먼저 와서 식사를 마친 할머니에게


"우리 엄마, 내가 커피도 드려야 하는데, 너무 바쁘네. 잠깐만 기다려요."

할머니가

"얼마나 기다려?”

"한 시간 기다려요."

"먹으려면 한 시간 기다려야지."

했다.



동네 어른들에게 커피도 챙겨주는 정겨운 곳이었다.


유머 있는 아주머니 덕분에 줄줄이 미국식 유머를 구사하는 신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유머야 즐겁고 신나는 일이지만,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유머를 구사하다니... 내공이 느껴졌다.


유머란 누군가 던지는 공.

것을 받아치면 유머는 살아 움직인다.

하지만 그 공을 받지 않으면, 누군가 유머를 시작했다 해도 바로 죽는다. 곧 사라진다.


처음 본 아주머니가 시작한 동그란 유머가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뒹구는 모습을 보았다.



떡볶이와 순대를 다 먹고 나오는 길, 병뚜껑이 눈에 띄었다. 누구 작품이냐고 물었더니, 아주머니 작품이란다. 미슐랭은 아니지만 저 뚜껑 위 별처럼 맛도 유머도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었다. 유머로 배가 불렀다.










P.S - 이 글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어린 신사 숙녀들에게 상황에 알맞은 행동을 일러 주는 유쾌한 예절 안내서를 담고 있는 책으로



악당이 도서관에 쳐들어와서 올가미를 씌우는 위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


도서관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이 일류임을 깨닫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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