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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Apr 09. 2023

양보는 아무나 하나?

몸이 가까워야 마음도 가까워지는 법.



동생네와 멀리 살아 조카들을 자주 보지 못했다. 커가는 아이들의 시간이 아까워 따뜻한 봄, 난지도 한강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카들이 오기 편하게 우린 좀 오래 걸리더라도 동생 집과 가까운 난지도 한강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파란 하늘을 보며 마음까지 깨끗해졌다. 날씨가 좋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본 조카들. 못 본 사이 훌쩍 커 있었다.


한강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계 불었다. 화장실 가까운 곳에 돗자리를 펴고, 텐트를 쳤다. 짐을 다 옮기고, 근처의 편의점을 검색했다. 편의점은 한강 어디에나 하나씩은 꼭 있다고 생각했다. 난지도 한강공원에도 편의점은 있었는데, 공사 중이었다. 이건 우리 나들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한강에 편의점이 얼마나 중요한데... 차도 있으니까 근처 다른 곳을 가면 되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일단 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 셋을 남편이 차에 태워 가기로 했다. 일상에 채이는 게 편의점이니까, 라면 먹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근처의 하늘공원 편의점을 검색해서 갔는데, 거기도 문은 닫혀 있었다. 다음은 망원 한강공원을 검색해서 이동했다. 위치는 가까운데, 가는 길이 가로막혀 차로 빙 돌아 도착했고, 이미 오후가 된 시간에 주차를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하고, 우리는 수박, 오렌지, 빵, 고구마 등 간식만 잔뜩 사 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밥이라도 사 오는 건데, 뒤늦은 후회는 의미가 없었다. 거의 두 시간 뒤에 도착한 아이들이 툴툴거렸다.


"라면 하나 먹으려고 이렇게 고생하다니..."


초등학교 일 학년이 된 조카는 오자마자 엄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고모부가 라면 두 개 먹었어."


남편은 안 먹는다고 말하는 조카가 끼니를 거르는 게 마음이 쓰였는지, 끓이면 먹을 거라고 생각해서

두 개를 샀는데, 정말 안 먹는 바람에 자기가 혼자 다 먹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라면 먹기가 끝나고 아이들은 한강공원에서 공놀이를 시작했다.


조카가 유치원 다닐 때, 달리기 시합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의 기를 세워주려고 결승선에서 속도를 낮춰서 져 줬는데, 아이의 생각을 달랐다. 자신이 진짜 이긴 줄 알았다. 나를 보며 "어른이 아이한테 지네."라고도 했고, 그날 헤어지고도 동네에서 내가 어른을 이긴다며 사람들에게 자랑을 한다고 했다. 조카의 달리기 자존감을 내가 세워주었다.


그 후, 나만 보면 달리기를 하자고 했다.

"고모 다리 아파서 달리기 못해."

라고 말해도 계속 쫓아다니며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다. 이제 커서, 시합을 하면 내가 질지도 몰랐다. 할머니, 고모부, 언니가 달리기 하자고 해도 다 싫다 하고 꼭 나와 해야 한다고 했다. 어쩌다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된 건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아이들이 노는 사이, 우리는 텐트에 들어가 못 본 사이 일어난 이야기들을 풀어놓느라 바빴다. 3학년  부회장이었던 남자조카는 4학년이 되어서도 부회장이 되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활발하고, 말썽꾸러기여서 임원을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번이나 당선되고 보니  가족이  번이나 놀랐다.


3학년 때, 뭐만 하면 친구들이 "부회장이 왜 이러냐?"는 핀잔을 들어서 4학년때는 절대 안 한다고 했는데, 됐다는 것이었다. 학급 임원은 내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부회장이 된 건지 물음표가 가득했다. 그런데 그날, 한강에서 어렴풋이 알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데, 그 옆에도 다른 아이들이 축구, 야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케가 조카에게 "너 왜 자꾸 네 공도 아닌데, 다른 애 공 굴러가는 걸 달려가서 차주는 거야? 그것도 세 번이나? 고맙다 말도 없구만..."


엄마 입장에서는 내 애만 손해 보는 것 같은 행동을 하면 속 상하다. 그 마음은 안다. 그런데 고모로서 좀 떨어져 관찰하다 보니, 아이의 그런 면모가 반 친구들의 호응을 얻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자기중심적이기는 쉽다. 하지만 이타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어렵다. 학급을 꾸려가는 아이에게는 이타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나만 생각해서는 모두를 아우를 수 없다.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기꺼이 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 상담을 하러 갔다가 학교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요즘은 가정에서 '서로 양보해라 '라고 교육하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또렷하게 주장하라'라는 식으로 교육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양보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양보하면 금방 넘어갈 일도 갈등으로 번지는 일이 많다고 했다. 학급에서 서로서로 양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나 역시도 아이가 학교에서 준비물을 맡아 올 때, 다른 친구들이 원하는 것 다 가져가고, 남는 선택을 하거나, 원치 않은 연극 배역을 맡을 때, "양보하길 잘했어."라고 마음을 다독여 준 적이 없었다.

"다음에는 네가 먼저 한다고 해봐. 계속 그렇게 원하지 않는 걸 선택하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나무라기도 했다.


양보는 있어야 하는 사회지만, 그 양보를 내 아이가 하기를 바라진 않았던 것이다.

부모의 인식과 태도가 먼저 바뀌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부터 양보하는 아이를 보면 다독여줘야 했다.





모르는 아이의 멀리 굴러가는 공을 잡아주는 그 마음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양보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에...

소수만 하는 태도이기에 더 소중하다.





/

양보 : 남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희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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