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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May 09. 2023

새에게 배운 위기대처 능력

탐조

밖으로 나가면  일상의 배경음악이 되는 소리가 있다.






새의 종류에 따라 다른 소리를 들을 때면 늘 궁금했다. 새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늘 곁에 있지만 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새들의 언어를 모르는 외국에 사는 기분이 들었다.

집 앞에 한 나무에 유독 많은 새가 모여 있었다. 그 길을 지날 때면 나무가 노래하는 듯 새들의 합창이 크게 울려 퍼졌다. 다른 나무가 아닌, 유독 그 나무에만 새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새들은 내게 노크했다.


그러던 중 바다숲책방에 갔는데, 책방지기님의 취미가 탐조라고 했다. 늘 궁금했던 새의 세계였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탐조 갈 때 저도 불러주세요."


탐조가 뭔지도 모른 채 오로지 새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하나로 따라갔다. 오전이 새들의 활동이 활발하다기에 9시쯤 동탄호수공원에 갔다. 도구가 하나도 없던 나는 책방지기님의 망원경을 빌려 탐조를 시작했다. 흔히 볼 수 있는 까치가 보여 렌즈로 보았다. 내 눈앞에 있는 듯 두 눈 가득 까만 까치가 보였다. 몸통을 움직일 때, 꼬리가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꼬리 따로 몸 따로 움직였다. 위와 아래의 근육이 따로 존재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망원경 하나를 가졌을 뿐인데, 섬세하게 새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스치기만 했는데 이제는 시간을 들여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5월은 뿔논병아리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오리는 알아도 뿔논병아리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새 선배님을 따라 호수 위의 뿔논병아리를 관찰했다. 이마 위로 검은색 앞머리가 뻗친 듯 솟아 있었고 커다란 귀처럼 주황색의 깃털이 단발모양처럼 늘어서 있었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새 선배가 말했다.


"등에 새끼가 타고 있는대요. 보이세요?"

"새끼요?"


같은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대도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숨을 참아가면 시선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렌즈 가운데를 돌려 초점을 맞췄다.


"등에 뭔가 움직이는 것 같긴 해요."

"새끼 세 마리가 타 있어요."

"세 마리요?"


날개 깃털 속에 삐져나온 작은 머리가 보였다. 백호처럼 줄무늬를 가진 새끼였다. 엄마인지, 아빠인지 알 수 없지만 부모의 등에 새끼들이 타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새끼들은 뿔논병아리의 등이 보금자리였다. 잠시 뒤, 저 멀리서 뿔논병아리 한 마리가 다가왔다. 숨죽이고 관찰했다. 다음에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 연속극보다 더 기대되었다. 다가와서는 새끼 입에 물고기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다른 새끼의 먹이를 찾기 위해 머리를 물속으로 넣어 잠수했다. 호수의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온  뿔논병아리는 물살을 가르며 새끼가 있는 곳으로 왔다. 차례대로 먹이를 주는 듯했다.


"새끼가 더 보여요."

"4마리인가? 5마리인 것 같은대요."


뿔논병아리의 날개 안에 이 층침대라도 있는 것일까? 좁아 보이는 공간에 새끼 다섯 마리가 숨어 있었다. 엄마오리 뒤로 따라가는 아기 오리들을 종종 보아왔지만 어부바하듯 등에 타 있는 뿔논병아리는 처음이었다. 어찌나 귀엽던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나하나 새끼 입에 먹이를 주는 장면을 몇 분 동안 계속 지켜보았다.


그동안 혼자 있는 새들만 보았는데 갓 태어난 새끼와 부모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새끼를 등에 태우고도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은 듯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과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나르는 뿔난 병아리의 모습에서 가족의 사랑을 느꼈다. 우리와 삶과 닮았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들의 세계로 그렇게 빠져들었다.  



호수를 반바퀴 돌았을 때쯤 작은 섬 같은 곳에 뿔논병아리가 앉아 있었다. 아까 봤다고 벌써 친숙했다. 뭐 하는 거지? 궁금해 관찰하는데 잠시 뒤 뿔논병아리가 일어서 서서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 자리에는 두 개의 알이 있었다. 이렇게 품어 아까 보았던 새끼가 되는구나 과정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뒤 입에 풀을 물고 와서는 둥지를 보강하기 시작했다. 수초로 집을 짓는구나. 좀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변기에 앉듯 알이 가운데로 오게 맞춰 앉았다.




"00님 오늘 운이 너무 좋은걸요. 이런 모습까지 보고.."

"그러네요. 너무 신기해요."



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이런 장면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새들은 자기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그들의 일상에 내가 타이밍 좋게 방문한 것이었다.


다른 곳에는 왜가리가 한쪽 발로 서 있었다. 미동이 없고 당당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왜가리네요."

"저 새가 왜가리예요? 근데 뭔가 잘 움직이지도 않고 태도가 남달라요."

"포식자라 그래요."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왜가리는 한 자리에 오래 있다가 볼 일이 있을 때에만 멀리 날았다.


그 모습이 까치와 대조적이었다.

까치가 지렁이 한 마리를 입에 물고는 나무 위에 앉았다. 맛있게 먹으면 그만인데 일단 발톱으로 지렁이를 밟아 놓고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저러는 거예요?"

"먹이를 뺏길까 봐 그러는 것 같아요."


초 단위로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렸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는데, 제대로 지렁이를 먹지도 못하고 경계만 했다.

왜가리는 당당했지만 까치는 계속 눈치를 보았다. 포식자의 위치가 왜가리를 여유 있게 만들었고 작은 먹이라도 뺏길 수 있는 환경이 까치를 초초하게 만든 것 아닐까?


새들의 태도에는 그들의 삶이 녹아 있었다.




/

빠르게 나는 멧비둘기의 입에 문 나뭇가지를 보고 멧비둘기의 둥지를 찾는 새 선배가 놀라웠다. 단서 하나로 사건을 찾는 탐정 같았다. 그리고 새 울음소리만으로도 어떤 종류인지 알아맞혔다. 초보인 나에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어느 분야든 경험이 쌓이면 이렇게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구나 깨달았다. 새 선배는 탐조를 하는 동안 자신이 관찰한 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봄철에 벚꽃의 꿀을 먹는 새들이 많은데, 부리가 긴 새들은 꽃 중앙으로 부리를 넣어 빨대를 꽂듯 꿀을 쪽 빨아먹을 수 있는데, 참새는 부리가 작아 그렇게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참새의 위기였다.

그런데 참새는 그 난관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는데, 꽃을 따서 꽃 뒤편을 쪽 빨아 꿀을 먹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참새의 문제해결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발상으로 달콤함을 쟁취하다니... 부리가 짧다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조건에 맞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참새에게는 지혜를

뿔논 병아리에게는 가족애를

중백로에게는 먹이를 잡기 위해 화살처럼 온몸을 던지는 열정을 배웠다.



그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찰랑이는 호수는 거대한 종이였고, 새들을 그 위에 적힌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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