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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May 18. 2023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에드워드 호퍼전시





인간의 고독하고 외로운 감정을 감각적으로 담아낸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를 보러 갔다. 미술전시가 좋은 이유는 한 사람의 삶을 작품을 통해 점이 아닌, 선처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호퍼의 습작부터 시기마다 화풍의 변화, 작품의 대한 연구, 대중에서 사랑받는 그림(절정), 생의 마지막 작품까지.... 긴 시간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신세계 '쓱' 광고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호퍼의 그림을 코로나 시기에 고립된 삶을 겪으며 더 사랑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호퍼의 그림을 두고 mbti의 i가 사랑하는 그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그림에는 대중의 감정을 끌어안는 힘이 있다.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인해 쓸쓸함을 느낀다.

또한 혼자 앉아 있거나,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의 그림들 역시 보고 있으면 내 안의 한 감정을 만나는 듯하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건, 혼자 있을 때 느끼는 내밀한 것들이기에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호퍼는 그 감정을 캔버스 위에 올려놓는다. 낯설지만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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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그림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내가 발견한 건 부부의 의미였다. 유명한 작품을 남긴 건 호퍼지만 그 작품에 영향을 준건 조세핀이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해 보자면


1. 작품생활의 변환점을 제공함

조세핀 니비슨 호퍼 역시 촉망받는 예술가였다. 수채화에 두각을 보이던 조세핀의 영향으로 호퍼는 1923년 야외 작업을 하며 수채화를 시도하고 그녀의 소개로 브루클린 미술관에 출품된 호퍼의 수채화는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채택되며 미술계의 큰 호응을 얻는다. 호퍼의 그림이 팔리지 않아 어려운 시기가 있었는데 조세핀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2. 취향이 비슷해서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음

둘은 문학, 영화, 연극, 프랑스에 대한 애정 등의 취향을 공유하며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으로 여행을 떠나 야외 작업을 즐겼다.


3. 상호 보완적인 관계

호퍼는 과묵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으며 사람들에게도 무뚝뚝했다. 반면 조세핀은 활달한 성격으로 예술딜러, 컬렉터, 큐레이터 및 기자들과 교류하며 그의 작품을 홍보했다. 그녀는 극단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려 다양한 포즈를 남편에게 제안했다.



4. 기록으로 남김

호퍼의 전시이력, 작품판매 등이 적힌 장부를 30년 이상 지속했다. 말수가 적은 편이던 호퍼가 언급하지 않았던 작품의 세부 사항들을 조세핀이 세세히 기록한 덕분에 작품 생애에 대한 이해를 불러오는 역할을 했다.




위의 네 가지는 전시회에 적힌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뭔가 정돈된 둘의 이야기라면 전시회 마지막에 배치된 영상은 둘 관계에 대한 흐트러진 삶의 장면을 알 수 있게 했다. 조세핀은 일기를 통해 부부사이에 있던 감정들을 기록했다.



ㅡ 조세핀은 에드워드 호퍼를 애드라고 불렀다. 그와 싸우거나 감정이 안 좋은 날에는 E.라고 적어 놓기도 했다.


ㅡ 그와 사는 건 답답했다. 하지만 뛰쳐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ㅡ 에디와 대화할 때 우물 안에 돌을 던지는 기분이었다. 풍덩 소리도 나지 않고, 물결만 일렁였다.


ㅡ 그는 그림을 그리러 방에 들어가면 몇 시간을 나오지 않았다.


ㅡ 나의 존재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ㅡ 나는 요리하는 게 싫다.


ㅡ (지인) 우연히 모임에 갔는데 그 자리에 호퍼가 있었어요. 팬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무색할 만큼 거친 말투로 이야기를 해서 괜히 말했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ㅡ (지인) 호퍼는 과묵했어요. 만나도 말을 잘하지 않았죠. 대부분 조세핀과 이야기했죠.


등등 일기 속 조세핀의 솔직한 감정들을 알 수 있었다. 영상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호퍼와 같이 사는 삶은 어려웠고, 답답했으며 외로웠겠다. 조세핀은 호퍼의 조력자로서 사는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고 싶진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로 끝까지 살았던 건, 각자 잘하는 걸 할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




둘이 함께 본 전시 티켓

과묵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호퍼는 그림을 통해 세계를 확장해 나갔고, 활달한 조세핀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호퍼의 그림을 알렸다. 이렇게 서로를 채워 주었다.

부부 사이에 맞지 않는 부분도 존재했겠지만, 둘이 여행을 좋아해서 각국을 돌아다니고, 연극을 100편이나 함께 보고, 저녁에 호퍼가 조세핀에게 책을 읽어주고, 호퍼는 일상 속에서 조세핀을 끊임없이 그리는 등 서로에 대한 애정과 공통의 취미생활도 부부로 살 수 있게 했다.



지인 중, 자녀들을 명문대에 보낸 부부가 있다. 남편에게 비결을 묻자 의외의 답변을 돌아왔다.

"부부사이가 좋아야 해. 아내가 하는 일을 지지하는 것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응원해야 해."

그것이 자녀교육의 팁이라고 했다.



호퍼와 조세핀을 보며 그 말 뜻을 알 것 같았다.

그저 옆에서 지지하는 걸 넘어, 잘할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서는 것의 의미를...


그날, 전시회 속 호퍼와 조세핀이 함께 만들어간 작품들이 내게 물었다.

서로를 인정하고 있냐고?

좋아하는 걸 좋아하도록 응원해 주고 있냐고? 말이다.



어쩌면 너무나 다른 둘이 부부로 살며 위기와 고난, 외로움을 극복하며 함께하는 방법은

상대를 위해 나를 버리는 배려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것이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것.

윈-윈 하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나도 성장하고, 부부도, 아이도, 가정이 함께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호퍼 부부


호퍼가 그린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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