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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Apr 22. 2023

처음, 공짜이모티콘을 거절하다

지인 중 이모티콘 부자가 있다.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마다 새로운 이모티콘이 등장한다. 어디서 그렇게 발 빠르게 정보를 얻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몇 년째 궁금해하는 중) 이모티콘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했다. 그래서 그녀와 대화할 때면 어떤 이모티콘이 등장할까? 늘 기대하게 된다. 그녀 덕분에 알게 된 게 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와 대화가 끝나면 이모티콘을 한 번 톡 쳐서 화살표를 따라 들어간다. 그렇게 나도 공짜 이모티콘을 다운 받는다. (기간 한정 이벤트라 이벤트 끝나기 전 다운받는 것이 포인트)

브랜드는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어서 좋고, 소비자는 앙증맞은 그림을 소유할 수 있으니 모두에게 다 좋은 기획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이모티콘을 혼자만 알기에는 아까워,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도도도 춘식이> 이모티콘을 올리자마자 아이는 1분 안에 다운을 받았다. 너무 빨리 다운로드하여 새삼 MZ세대의 속도에 감탄했다. 평소 그렇게 알게 된 공짜 이모티콘도 공유하지 않는 남편은 내가 선물한 이모티콘에 반응이 없었다.






<도도도 춘식이>이모티콘





다음 날, 그녀와의 톡에서 또 새롭게 알게 된 이모티콘 이벤트가 있어서 같은 방식으로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가 반응이 없었다. 몇 시간 뒤, 아이가 모르는 듯해서 알려주었다.


"엄마가 단톡방에 이모티콘 올려놨어."

"봤어."

"그런데 왜 다운 안 받아?"

"내 스타일 아니야."



<CJ온스타일 이모티콘>



그 말이 충격적이었다. 본인 취향이 아니라고 다운을 받지 않는다니... 무려 공짜인데...


나도 물건을 살 때에는 여러 번 고민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정도로 까다로운 취향의 소유자였는데, 공짜 이모티콘에는 취향이 없었다. 어떤 그림체는 마음에 들고, 어떤 그림체는 별로다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왜?

공짜니까.



공짜인 것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주는 게 어디인가?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모티콘 헌터처럼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내면 기뻤고, 다운 받아 쓰곤 했다.

사실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어서 좋기도 했다. 평소 귀여운 걸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이 기회에 써보지 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을 보며 공짜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아이가 나보다 짧은 기간을 살았지만 취향에 있어서는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공짜라도 내 취향이 아니면 거절하는 것.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책은 도끼다.>라는 책제목처럼

아이의 <말은 도끼였다.> 내 생각의 틀을 깨 주었다.


그동안 생각 없이 모든 걸 다 다운받았던 공짜 이모티콘에 대해, 어떤 건 내 취향인지 어떤 건 아닌지?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삶의 기준을 가지고 사는 것은 멋있는 삶이다.

아이에게 배우고, 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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