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에서 서울을 갈 때, 광역버스를 타면 고속버스전용차선으로 달린다.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버스를 탄 사람들 모두 누리는 혜택이니까... 하지만 부산에서 판교로 올라오는 날에는 버스전용차선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부산가족여행을 위해 9명이 탈 수 있는 <스타리아>를 빌렸다. 온 가족이 다 탈 수 있는 기능만 생각하며 골랐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서울에서 부산으로 출발할 때에는 아침 5시에 출발해서 도로가 한산했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가족들도 차 안에서 부족한 잠을 자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침에 먹은 게 없으니, 화장실에 자주 안 갔다. 부산으로 가는 길은 평온하고 고요했다.
스타리아 승합차가 크다고는 하지만 의자에 카시트 2개를 설치하고, 드렁크에 실지 못한 9명의 짐을 테트리스처럼 의사 사이사이에 끼워 넣다 보니 탄 사람들이 움직일 수 없었다. 내리고 탈 때 불편했다. 맨 뒷자리에 탄 사람이 나오려면 의자 2개를 접어야 했다. 두 자리 가운데에 낀 커다란 여행가방으로 의자를 접는 것도 어려웠다. 초반에는 여행의 설렘으로 감당할 수 있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내리고 타는 일이 벌칙처럼 느껴졌다. 버거워 안 내리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운전석 뒷자리에 카시트를 설치했는데, 카시트 때문에 가운데 자리가 좁아 불편했다. 가운데 자리를 초등 고학년인 딸이 안게 되었는데, 자리도 좁지, 양 쪽의 초등저학년 동생들이 계속 말장난을 치기도 하고, 엄마가 옆에 앉으라며 칭얼거리지 결국 마지막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울음을 터트렸다. 참다가 한계점이 온 모양이었다. 진작 불편하다고 말했으면 금방 바꿔 줬을 텐데, 외숙모가 그 자리로 오면 불편할 것 같아 배려한 거라고 했다.
아이의 눈물로 외숙모와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그 후 잠깐 평온이 찾아왔다. 부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오후시간이었기에 가족들 모두 배변활동이 활발했다. 어른들이야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해결했지만, 아이들은 중간중간 신호가 오는 바람에 자주 멈췄다. 화잘실이 급하다고 중간에 한 번 서고, 조카가 열이 나서 여행 가방 속 약을 꺼내기 위해 차를 멈추었다. 주유하기 위해 또 멈추고, 네비를 다시 설정하기 위해 멈추는 등.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가도 가도 도착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고요했던 출발의 풍경과는 달랐다. 그 순간 남편이 "한 시간 내로 집에 도착합니다." 호언장담을 했다. 길이 막힐 수도 있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의아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승합차로 고속도로버스전용차선을 달릴 수 있는데, 네비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최단거리로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니 계속 막힌 길로 왔던 것. 남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휴게소에 들러 고속도로전용차선을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을 찾아 다시 설정했다. 우리도 승합차가 처음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 후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오른쪽에는 차들이 꽉 막혀 움직이지 않는데, 고속버스전용차선을 탄 우리 차만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여행길마다 세 가족인 우리는 저 꽉 막힌 차 중 하나일 뿐이었지, 버스전용차선을 달려본 건 처음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가족 모두 처음이었기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묵은 변비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아마 이런 가족 여행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부산에서 회도 먹고, 핫한 디저트도 먹고, 멋진 카페도 가고, 백만 원 자리 고급스러운 숙소에도 머물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고속버스전용차선을 달린 것이었다. 승합차의 호사였고, 짜릿한 쾌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여행은 이렇게 예기치 못한 순간에 꼭대기의 즐거움을 맛보게 했다. 그 밀당을 맛보기 위해 또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나 처음으로 천상의 길. 고속버스전용차선을 달려보았다. 여행의 고단함이 사라지는 질주였고, 여행의 엔딩 선물 같았다. 달콤한 질주를 언제 또 맛볼 수 있을까? 그 소중한 감정을 내내 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꼭 승합차에 사람을 꽉 채워 모세의 기적을 누려보길 바란다. 어떤 놀이기구에도 느껴보지 못한 짜릿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