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쓰는 일기
<어슬렁 클럽>
어슬렁거리다가
에스프레소 세계로 퐁당
아슬랑 아슬랑 거리다가
안 먹던 요거트를 후루루루
어슬렁 어슬렁 어슬렁 거리다가
요정 이야기에 폭
어슬렁 아슬랑 어슬렁 아슬랑 거리다가
새로운 친구가 쓰윽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쏟아지는 상큼한 일들
(2023.09)
수요일은 바다숲 책방에서 그림책 수업이 있다. 동네에는 책방이 없어서 30분 차를 타고 동탄까지 간다. 왕복 한 시간의 거리이지만, 챙겨 가는 이유는 수업이 끝난 후, 즐거운 일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수업 후, 책방지기님 소개로 같은 상가에 에스프레소바가 생겨서 처음 에스프레소를 먹어보았다. 책에서만 보던 ‘카페소스페소(이탈리아의 커피 나눔 문화로 누군가의 커피값을 미리 지불하여 마음을 나누는 것)’를 직접 경험해 본 게 특별했다. (나는 카드에 카페에 오는 손님 중, 아이를 동반한 어른이라고 적었다. 그 다음 주 토요일, 병원에 가서 아이 주사를 두 대 맞추느라 지친 엄마가 커피쿠폰을 썼다고 했다.)
어느 날은 수업이 끝나고 책을 보고 있는데, 꽃집 사장님이 책방에 놀러 왔다. 꽃집 사장님은 요정과 천사를 좋아시는 분이었다. 요정의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요정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관과 다르다고 했다. 요정은 누군가를 돕는 세계라고 했다. 인간의 세계처럼 이익을 계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다음 주는 책 교환을 위해 온 손님과 셋이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어떤 날은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요거트를 맛보았는데, 신선한 과일과 바삭한 그래놀라의 조화에 빠져 그동안 요거트를 안 먹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림책 3기의 수업의 마지막 날,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한 분도 오랫동안 책을 펼쳐보고 있었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저는 오늘 내심 수업이 끝나서 뒤풀이 같은 게 있을까? 기대했는데, 없어서 아쉬웠어요.”
“아 그랬구나. 그런 게 따로 마련된 건 아니고,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은 저처럼 책방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그게 자연스럽게 뒤풀이가 되기도 해요.”
“그래요? "
" 오늘 이렇게 남이 있으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잖아요. 혹시 시간 되면 커피 드시러 카페 갈래요?”
내가 처음 그랬듯 우리 셋은 함께 에스프레소바를 찾았다.
뒷 이야기가 더 재미있듯 서로를 알아가는 즐거움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커피를 마시며
“우리 어슬렁 클럽 할까요? 멤버는 정해져 있지 않고, 그날 시간이 되는 사람들이 이렇게 책방을 어슬렁 거리면 바로 만들어지는거에요. 어때요?”
“좋아요.”
그날 떠오른 단어였다. 어슬렁. 그렇게 어슬렁클럽이 생겼다.
돌이켜 보니, 책방에서 있었던 신기하고 좋은 경험은 모두 어슬렁거린 덕분이었다. 오늘 무엇을 하자.라는 뚜렷한 목표 없이 몸을 조금 흔들며 계속 천천히 걸어 다니다 보니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대화를 시작으로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며 책 친구가 되었다.
다음 주도 기다려진다. 그 주의 어슬렁클럽에 누가 올까? 누가 어슬렁거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