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모임에서 새로 알게 된 00님은 첫날부터 느리고 차분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눌 때면 다도를 하는 듯 편안해졌다. 그녀가 내뱉는 말도 은은했다.
수업시간 선생님은 공지글에 담긴 사진을 가리키며 머쓱해했다.
“코로나 전에 찍은 사진이라 지금보다 젊죠?” 물었고
00 씨는 “지금이 더 아름다우세요.”라고 말했다. 상대를 다독이고 안아주는 말이었다.
수업 중 다른 사람이 하는 말도 귀 기울여 듣는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때 이런 말을 했잖아요.라는 말을 자주 썼다. 누군가의 말을 스치듯 듣는 사람은 많지만 정성스럽게 귀 담아 듣는 사람은 얼마 없기에 고운 사람처럼 느꼈다.
이번 주 만남에도 방긋 웃으며
“하연님, 지난주에 집에 가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비도오고 퇴근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혔을 것 같아요.” 하고 안부를 물었다. 이미 지나온 시간을 물어봐 주는 그녀의 온기에 마음을 조금씩 빼앗겼다. 수업 전,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그녀의 옷이 눈에 띄었다. 베이지색의 면 잠바였는데, 베이지색의 가죽 카라가 달려 있었다. 색은 같은데 소재가 다른 옷이었다.
“오늘 옷 멋지네요. 디자인이 특별해요. 근데 00 씨 베이지색 좋아하세요? 지난주에도 베이지색 원피스 입고 왔던 것 같은데...”
그녀는 무언가 들킨 것처럼 눈이 동그래졌다.
“맞아요. 제가 옷을 사도 늘 베이지색만 골라요. 남편이 옷을 살 때, 베이지 계열의 옷만 발견하면 여보 옷 아니야?라고 물어요. 그리고 제가 뭘 고르기만 하면, 그 옷 집에 있는 것 아니야?라는 말도 자주 해요.”
세 번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컬러를 알아차렸다.
“신기하네요. 제 주변에 블랙, 회색 옷 좋아하는 친구는 있는데, 베이지색은 처음이에요.”
“그런데 왜 베이지색 옷을 좋아하세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럼 학창 시절부터 베이지색을 좋아했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학창 시절에는 알록달록한 옷이나, 꽃무늬도 입었던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베이지색 옷을 입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상담할 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제가 방해가 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색이 화려하거나 시선을 분산하는 무늬 대신 베이지색 옷을 입었던 것 같아요.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랬구나. 이미지랑 너무 잘 어울려요. 뭔가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누군가와 옷차림으로 이렇게 오래 이야기해본 건 처음이었다. 스티브잡스 하면 블랙티와 청바지를 떠올리듯 그녀를 생각하면 베이지색 옷이 떠오를 것이다. 알록달록한 내 옷장에는 별로 없는 베이지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베이지색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통해 개인이 어떤 색을 좋아하고, 왜 자주 입게 되었는지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상대의 말투, 눈빛, 태도뿐 아니라 옷차림도 눈여겨봐야겠다. 패션은 그 사람의 제2의 언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