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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22. 2023

살을 10kg를 뺀 계기가 있었어?





몇 달 만에 만난 친구들은 각자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들만 골라 이야기했다. 첫 번째 주자인 s는 주유 비상등이 켜져서 주유소를 가는데, 길 한복판에 차가 멈췄다고 했다.


"퇴근시간이었거든 주유소가 코앞이었어. 유턴만 하면 기름을 넣을 수 있는데 차가 딱 멈춘 거야."

순간 우리의 차가 멈춘 것처럼, 뭉크그림의 절규 표정이 되었다.

"그래서?"

"보험사에 전화를 하고 기다리는데, 지나가는 차들은 경적을 울려대지. 한여름, 에어컨도 안되니 땀이 뻘뻘 나지. 더우니까 창문을 열어놨는데,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지나면서 욕을 하는 거야.(그 마음도 이해되지) 옆에 앉아 있던 아들이 놀라서 덜덜 떨고... 그 와중에 시간 지나니까 아들은 나를 위로더라.. 엄마 괜찮아. 나는 재밌는 경험이라고 생각해. 라며... "

"어떻게해."

"말도 마.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근데 너희도 이런 일 생기면, 근처 주유소에서 3리터 기름을 받아와서 넣는 게 더 빨라. 보험사도 그렇게 하더라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 s에게 일어났다. 비상사태가 생기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대안까지 제시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두 번째 주자는 나였다.

"우리 가족, 저녁으로 주꾸미를 먹었거든. 근데 초고추장의 유통기한이 지난 거야. 그런데 어떻게? 마트도 먼데 나가서 사 올 수도 없고, 그냥 먹었지. 근데 남편이 그게 탈이 났는지, 한 밤중에 배 아파서 응급실에 다녀왔잖아. (딸이랑 나는 괜찮은데) 여기 이사와서 한 번도 큰 병원에 간 적이 없었는데, 그날 응급실 검색해서 처음 병원에 갔다니까.... 다행히 수액이랑 진통제 맞고 좋아졌어. 근데 남편이 고맙다고 부인 없으면 못 산다고 여러 번 이야기하는 덕에 하나도 안 힘들더라. 응급실 덕에 사랑을 확인한거지."

"그래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해야 알지. 너네 남편 표현 참 잘해."


세 번째 주자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나, 살 10kg 뺐어. 몸도 가벼워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좋더라."

"10kg나? 대단하다. 2kg빼기도 힘든데... 어떻게 뺀 거야?"

"요가하고, 식단조절하고, 밥도 젓가락으로 먹고 했지."

"진짜 너무 대단해. 누구나 마음만 먹지. 그렇게까지는 빼기 힘든데..."

"근데 갑자기 왜 살을 뺄 생각을 했어? 어떤 계기가 있었어?"

"계기가 있었지. 아이 엄마들 모임이 있는데, 셋 다 날씬해. 애 셋을 키우는 엄마는 꾸준히 관리를 해서 배도 안 나오고, 크롭티를 입고 다니거든. 내가 요가 등록하면서 나 이번에 살 꼭 뺀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에이 언니 뭘 빼요? 언니 인생에 한 번도 마른 적 없잖아요. 그냥 살아요. 이러는 거야. 그때는 농담처럼 다 같이 웃으며 넘겼거든. 그런데 나중에 자꾸 그 말이 생각나더라. 내가 뚱뚱한 적도 없지만, 마른 적도 없긴 하지. 그러면 나는 평생 마르게 살 수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독하게 마음먹고 뺐어. 내일 그 엄마 만나."


어떤 말들은 내게 들어와 의지를 다지게 했다. 상대는 모르는 말 방아쇠가 당겨진다. 그 엄마의 말이 따끔하긴 했지만 친구를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의지는 돈주고도 살 수 없기에 충격요법이 제일 비싼 걸 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 겁이 많기로 유명하다. 뜀틀도 넘어질까 잘 못 뛰고, 놀이기구도 잘 못 타고, 차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데 옆 차가 우리 차선에 끼어들면 자주 놀란다. 이런 특성상 운전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대중교통이 적은 지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꼭 차가 필요했다. 날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다닐 수는 없는 법. 용기를 내어 운전면허를 땄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 면허를 딴 일이다. 내가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친구들이 놀랐다. 20대 초반, 아빠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고 그 충격으로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는 친구도 내 모습을 보며 운전을 다시 시작했다. 또 다른 친구는 운전은 무섭다며 오래 미뤄왔는데, "네가 하면 나도 못할 것 없겠는데."라며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에 묘하게 기분이 안 좋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나를 통해 두 명이나 운전을 하게 되었으니, 선한 영향력이라고 좋게 생각했다.


우리는 친구를 통해 좋은 것만 받지 않는다. 사랑, 우정, 질투, 시기, 용기, 위로 등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는다. 수많은 감정 재료 속에서 내가 어떤 것을 받아들일지는 내 몫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자양분 삶아, 시들지 활짝 필지도 내 몫이다. 당장, 내게 기분이 나쁜 말도 성장하는 거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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