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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26. 2023

신랑이 부케를 던진 이유?

결혼식

돌잔치

장례식


경조사에도 명도가 있다.


나이에 따라 참여하는 경조사가 달라졌다. 20-30대에는 결혼식, 그 후에는 돌잔치, 그 후에는 장례식장. 최근에는 장례식장에 가는 날이 많았는데, 흔치 않게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남편의 대학원 후배의 결혼 소식이었다.


결혼식의 모습도 시간의 파도를 타고 조금씩 달라졌다. 이번 결혼식은 주례 없이 신랑, 신부의 다짐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해서 지금까지 일만 열심히 한 부인을 위해 결혼 후, 자주 여행을 다니겠습니다.”

신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었다. 신랑은 자기와 함께하는 결혼 생활은 즐거운 시간들로 채우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결혼 후, 일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가끔은 남편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결혼 서약 안에 서로가 원하는 것들이 잘 담겨 있는 걸 보니, 이 다짐을 위해 대화를 많이 한 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결혼 전에 이런 과정이 꼭 필요해 보였다. (우리 부부는 이런 과정이 없어서였을까? 서로가 원하는 것을 잘 모른 채 살았던 듯싶다. 살아가면서 알아가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잘 모를 수도 있다. )     


부부의 다짐 후, 축사가 이루어졌다. 신부의 남동생이 나와 편지를 읽었다.

“내가 결혼을 해야 하는데, 누나가 결혼을 안 해서, 언제 가나 걱정했는데, 매형을 만나려고 그랬구나?”

라며 위트 있게 입을 열었다.

“매형 우리 누나는 한 번 결정할 때, 무슨 일이든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러니 조금 참고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누나는 애교가 많은 편이에요. 누나의 애교를 사랑스럽게 봐주세요.”     

담담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에 내 눈이 젖은 빨래처럼 촉촉 해졌다. 형식적인 주례사보다 진짜 마음이 묻어 있는 순간들이 돋보였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충만함이 느껴져, 여운이 오래 남았다.  

    

가족들의 사진촬영이 시작되자, 결혼식의 길을 장식했던 꽃들을 철수했다. 구석에서 김밥을 말 듯 꽃을 포장지에 말아 참석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밥을 먹지도 않았는데 꽃 배가 불렀다. 뜻밖의 꽃 선물에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의 사진을 찍으러 사람들이 모였다. 모눈종이 위에 사람을 놓듯, 많은 사람들의 위치를 조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부케를 받을 시간이었다. 처음 보는 장면이 펼쳐졌다.


부케를 받는 사람이 두 명이라고?


한 명은 신부 쪽에 서 있는 여자였고, 또 한 명은 신랑 쪽에 서 있는 남자였다. 늘 신부가 던지는 부케만 보아왔는데, 이번에는 양 쪽에 던졌다. 그 장면을 보고 왜 그렇게 한 건지? 궁금했다. 밥 먹으러 가는 길, 함께한 지인에게 그 장면이 신기하다고 했더니


“외국에서는 신랑의 가슴에 있는 부토니에를 던지기도 해요.”

“그래요? 전 처음 봐서 신기하더라고요.”     


호텔 뷔페의 음식들이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갓 지은 밥처럼 따뜻하고, 회들도 싱싱했다. 신랑, 신부가 우리 자리에 와서 인사를 나눴다. 이때가 아니면 물을 수 없을 것 같아. 호기심의 낚싯줄을 던졌다.     


“신랑 부케 던진 거 누구 아이디어예요?”

“제(신랑) 생각이에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아, 제 친구도 곧 결혼해서 그 친구도 축하해 주고 싶어서, 부캐를 두 개 만들었어요.”     



친척분들이 부르는 바람에 신랑과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짧은 대화를 통해 자시의 결혼식을 스스로 기획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래 기억될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의 장면을 통해 부캐를 꼭 신부만 던질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축복의 의미라면, 엄마에게, 조카에게 던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오랫동안 보아온 고정된 장면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본 뉴스가 떠올랐다. 필리핀의 결혼식 장면이었다. 백색의 드레스를 입고 꽃 대신 양파 다발의 부케를 들고 있던 신부였다. 필리핀 물가가 올라, 꽃값이 비싸서 양파로 부케를 만들자고 생각했단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꽃 대신 양파를 선택했고 양파부케가 무거워 던지지 않고,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그 자리에 온 하객들을 양파를 들고 가서 카레를 만들어 먹었을까? 양파를 가져간 하객들은 그 결혼식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결혼식에 신랑 신부의 삶을 녹여내는 방향을 꿈꾼다. 큰 변화가 어렵다면 부케부터 작게 시작하는 건 어떨까?

운동화 부케, 책 부케, 화분 부케, 바이올린 부케, 모자 부케 등

부부의 개성이 더해진 부케들이 등장하면, 결혼식 가는 발걸음이 콘서트에 가는 듯 흥이 날 것이다. 매번 설레는 축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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