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정류장처럼 스쳐간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이어도 기억에 없을 수도 있고, 짧게 만났지만 강렬하게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대학원 조교로 일할 때였다. Y는 교무처에서 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끔 우리 사무실에 우편물을 전달하러 들었다. 순박한 인상의 청년, 그가 사무실 문을 열 때면 늘 우렁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적막했던 공간 속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인사 잘한다고 면박주는 사람은 없었다. 성실한 분위기를 가진 그는 인사를 할 때면, 허리를 90도로 굽혔고, 주춤거림 없이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었다. 등장과 함께 사라지는 사람. 우편을 전해주면 바로 떠났다. 한 공간에서 오래 함께 일한 동료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희미한데, 이상하게 그의 모습은 10년이 넘어도 계속 기억이 난다.
학원을 끝낸 아이와 무인 발급기에서 필요한 서류를 뽑고, 우리가 좋아하는 동네 닭갈비집에 갔다. 들어서는 순간,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합창하듯 우리를 반긴다.
“어서 오세요.”
환대받는 기분이 든다. 그때에도 어김없이 Y가 떠올랐다. 쾌활하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가 자동으로 떠올랐다.(이렇게 존재감이 클지 그는 알까?) 커다란 팬에 놓인 하얀색 치즈와 빨간색 닭갈비가 먹음직스러웠다. 좋아하는 떡도 있고, 깻잎도 있고, 고구마도 있어서 종합선물 같다.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는 아이를 바라보며 흐뭇했다. 자식이 잘 먹는 모습은 부모가 되어 느낄 수 있는 진한 행복 중 하나였다. 아이의 먹는 속도가 느려질 때쯤 말을 걸었다.
“여기 직원들은 다 인사를 잘한다. 린이 너도 선생님께 인사 잘해?”
“응. 당연하지. 하루도 안 빼먹지.”
“잘하고 있네. 인사는 소중한 거야. 엄마가 옛날에 대학원에서 조교로 일할 때, 한 오빠가 있었거든..."
Y의 일화를 전한다.
"너네 반에서 아침에, 선생님께 인사하는 친구는 몇 명이나 돼?”
“삼 분의 이 정도.”
“많이 하네. 선생님이 인사 잘 받아주시나 보다.”
“응. 애들 한 명 한 명 다 받아주셔.”
“대단하시다. 인사를 받아 주는 것도 중요해. 안 받아주면 그다음부터 인사를 잘 안 하게 될걸.”
“근데 선생님은 인사 안 하는 애들한테도 먼저 인사를 하더라.”
“진짜? 정말 멋진데? 선생님도 아침에 할 일이 있으실 텐데... 28번이나? 힘드시겠다.”
“뭐가 힘들어? 안 힘들걸.“
“누군가에게 집중하고 반응하는 건 보통의 정성으로 안 되는 일이야. 린이 그럼 아침에 엄마한테 인사 28번 하고 가볼까?”
“아니야. 아니야. 내가 잘못 말했어.”
하얀 치즈처럼 대화가 쫄깃쫄깃했다. 아이의 말을 통해 교육의 의미를 생각한다. 교육이란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및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고려대한국어사전)이다.
아이가 커서 어디를 가든 사회 안에서 S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을 뭔지 아는 것. 존재 자체로 울림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일 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인사를 하고, 인사를 받아주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존경의 마음이 피어났다. 무언가를 지속하는 것만큼 훌륭한 교육이 있을까? 좋은 메시지는 여러 번, 다양한 어른을 통해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도 틈나는 대로 인사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에게 한 번.
분리수거하면서 만나는 경비실 아저씨께 한 번.
빵집 언니에게 한 번.
마트 점원에게 한 번.
택배 아저씨에게 한 번.
생각해 보면 인사만큼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건 없다. 빈도수와 영향력으로 인해 인사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인사란 내게 달린 리본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만나자마자 상대에게 주는 고운 마음이다. 오늘도 우리는 고운 마음을 주고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