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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04. 2023

왜 술잔에 술을 흘러넘치게 줄까?

나고야 여행에서 가장 기다린 순간은 짐을 풀고 마시는 생맥주 한 잔이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근처의 알아둔 사케바를 향했다. 여름이어서 그런지, 저녁이었어도 여전히 더웠다.


신기한 건 일상 속 더위는 나를 짓눌렀지만, 여행 속 더위는 견딜만했다.


송골송골 땀이 맺힐 무렵 오래된 나무 건물이 나타났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어두운 갈색의 빛깔들. 외관을 보기만 했을 뿐인데, 기대감은 커졌다. 작은 골목을 들어가니 뒤편에 마당이 보였고, 삐그덕 거리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입구가 보였다. 안에 사람은 얼마 없어 안심하고 있는데, 오늘은 예약이 꽉 차서 자리가 없다고 했다.


여행 전, 딱 여기 한 곳만 찾아볼 만큼 기대했는데 못 간다니 맥이 풀렸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더 물어보지 못하고 개운치 않게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가족의 장점은 빠른 단념이었다.


아쉬웠지만, 허기진 배를 달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너무 배고파서 맛집을 찾을 여력이 없었다. 지체했다가는 모두 예민버튼이 켜질 타이밍이었다.


"소바집은 어때? 오는 길에 봤어..."

"소바?"



소바를 즐기지 않아 내켜하지 않는 얼굴들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땀을 닦으면 걸었다. 4분 뒤, 소바집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사람이 얼마 없었다.(다행인가? 맛집이 아닐 수도 있었다)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첫 식사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애매한 감정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은 안에는 두 팀이 있었고, 직원은 우릴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외국인인 우리를 보고 뭔가 주춤거렸다. 그리고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 못해 번역기를 돌렸다. 직원은 음식이 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마감되었다고 돌아가라고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두 번의 거절은 견딜 힘이 없었다. 이 때는 2안을 생각하지 못한 내가 안타까웠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으니 허기에 폭발할 듯한 감정도 잠잠해졌다. 직원은 메뉴판을 갖다 주었다. 온통 일본어였다. 나고야는 관광지가 아니어서, 한적해서 좋았지만 식당에 영어 메뉴판이 거의 없었다. 또 번역기를 돌렸다. 나는 빨리 음식을 주문했으면 좋겠는데, 호기심 많은 남편은 정독하듯 메뉴판 구석구석을 살폈다.


"일단 시키고, 메뉴는 나중에 보면 안 될까? 음식도 늦게 나온다고 했으니, 빨리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


소바와 치킨가라아게, 튀김, 덮밥을 시켰다. 원하던 첫 식사가 아니었기에 실망스러웠지만 어떻게든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다행히 시원한 나마 비루 한 잔에 위안을 얻었다. 남편은 일본에 왔으니 일본 술을 마시고 싶다며 메뉴판을 보고 주문했다. 잠시 뒤, 점원이 갈색의 도깨비방망이 같은 커다란 술병을 들고 오더니 작은 볼을 받친 유리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어

어.”




우리는 처음 본 광경에 소리를 질렀다. 술잔의 8할을 지나 컵 밖으로 술이 콸콸콸 흘러넘쳤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했다. 왜 이렇게 술을 넘치게 주는 것일까? 추측하기 시작했다. 여기 문화인 것 같은데,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되면 신기하긴 하지만, 뜻을 모라 답답함도 같이 따라왔다. 직원도 이런 리액션을 하는 우리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놀랐다.



문제는 볼에 흘러넘친 술을 마셔야 하는가? 마는가? 였다.


남편은 잔에 있는 술은 이미 다 마셨고, 종지 속의 술도 마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다급하게 말렸다.


“그러지 마. 종지 들고 먹는 건 없어 보이는거 아냐? (국격을 생각함 ㅎ) 그건 안 먹는 것 같은데…“

"먹는 거 아니야?"


주위 테이블을 둘러보아도 알 수 없었다. 결국 종지의 술은 남겨 놓고 나왔다. 그 장면이 궁금해서 일본에 사는 지인에게 물었다.  알고 보니, 콸콸 넘치게 술을 따라 주는 것을 '못키리'라고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즐겁길 바라는 이자카야 주인장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넘친 술은 원래 술잔의 술을 마신 후, 잔에 채워서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가게가 다 그렇게 주지 않아. 안 주는 곳도 있어."


그제야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그걸 남기고 왔으니,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문화를 몰라서 마음을 튕겨냈다. 나라 간에 뉘앙스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마음도 번역이 필요했다.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으리라.!!


레스토랑에서 글라스 와인을 시킨 적이 있는데, 너무 조금 따라 주어서 마음이 상한 적이 있었다. 그날의 경험에 비하면 못키리는 상대의 마음을 활짝 여는 역할을 했다. 계획했던 사케바를 못 간 덕분에 알게 된 정스러운 술문화였다. 이번주 친구네 부부가 놀러 오는데, 응용해 볼까?


마음은 보이지지 않으니, 술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보여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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