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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27. 2023

왜 오피스텔 창문은 조금밖에 안 열려요?

연인과의 헤어짐은 형벌이다.


가장 강렬한 시간 속에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지만, 헤어지면 철저한 남이 되는 사이니까 말이다. (헤어지고 보는 커플도 있지만...)

오랜만에 대학교 동아리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평소 소식을 묻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인스타를 통해 최근 연이 이어졌다. 내가 사는 곳 근처로 외근을 오는데 한 번 보자는 톡이었다. 오랜만이라 어색했지만, 선배와 나는 편안한(썸도 없던) 사이였기에 약속 시간을 정했다. 15년 만의 만남이라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만남에 ‘쭉 안 만나다가 이렇게도 만나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오빠 왔어요? 잘 지냈어요? 여기서 다 보네요."

“복태, 여전하구나.”

“오빠도 그대로네요.”     


20대 그 시절 나의 별명은 복태(박경림)였다. 정신없고 쾌활한 캐릭터였다. 나는 그 별명이 별로였는데, 오빠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졸업 후, 동아리 선배들과 멀어지면서 그동안 그 별명을 들어본 적 없는데, 몇십 년만에 소환된 별명에,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서로 어디에 사는지, 자녀는 몇 살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공백의 근황을 이어가면 밥을 먹었다.      


“39기는 자주 모여?”

“아니요. 우리는 주로 경조사 때 얼굴 봐요.”

“35기는 잘 모여요?”

“우리는 자주 모여. 두 달에 한 번은 모이는 것 같은데... 얼마 전에는 가족끼리 캠핑도 다녀왔어.”     

보여준 사진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가득했다. 방긋 웃는 모습들이 어제 만난 사람들 같았다.

“누가 모임을 주선해요?”

“내가 하지.”

“그렇게 주선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기수는 그런 사람이 없어요.”     



우리 기수도 자주 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후배, 선배들도 보고 싶어 졌다. 사는 동안 서로 바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는데, 오빠네 동기가 자주 만나는 걸 보니 부러웠다. 가능한 일인데, 의지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쑥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그때와 같은 밀도의 행복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느낄 수 없었다. 날마다 붙어 있고, 동아리 활동으로 취미도 같이 하고, 엠티도 가면서 여러 감정을 공유했기에 더 소중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호시절이라 여겼는데, 오빠를 통해 그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나조차 이런 감정이 낯설었다.


밥을 먹고, 근처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오빠는 건축과 전공으로 지금은 00 창호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평소 궁금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아파트는 창문이 커서 활짝 열면 환기가 잘 되잖아요. 그런데 오피스텔이나 어떤 호텔들을 가보면 창문들이 작게 나 있고, 조금만 열리더라고요. 그건 왜 그런 거예요?”

“오피스텔의 창문들은 바닥으로부터 120cm 위로 창문을 만들 수 있어. 창문이 안으로 열리느냐 밖으로 열리느냐에 따라 다른데, 밖으로 창문이 열릴 경우는 법적으로 조금밖에 열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 활짝 열리게 되면 사람의 팔이 닿지 않아서, 잡으려고 하다가 추락할 수도 있는 안전상의 문제가 있거든. 바람이 세계 부는 날이면 부압으로 인해 창문이 확 열리면서 밖으로 빨려 나갈 수도 있어. 그리고 창문이 확 열리게 되면 다른 기물에 부딪혀 창문이 떨어질 수도 있거든.”

“아. 그래서 조금밖에 안 열리게 해 놓은 거군요. 그런데 아파트는 전면으로 창문으로 열고 닫을 수 있잖아요?”

“그럴 경우는 창문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난간이 있어.”

“어 맞다. 난간 있다. 그 용도로 있는 거구나. 진짜 신기하다.”

“뭐가 신기해?”

“오빠는 전공이라 이미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저는 처음 아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신기하죠. 오피스텔이나 사무실 가면 문을 팍팍 열어서 시원한 바람도 맞고 싶고, 환기시키고 싶은데, 어디를 가나 창이 작고 조금 열리니까,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지어났지? 생각했거든요. 근데 오늘 그 궁금증이 풀렸어요.”

“난간의 경우도 간격이 10cm 이하로 되어 있어. 어린아이의 머리가 끼지 않도록 설계된 거.”

“뭐야, 곳곳에 인문학이 숨어 있었네요. 평소 불편하다고 여긴 것도 그 이유를 알게 되면 잘 이해할 것 같아요. 그동안은 몰라서 불만이 많았었죠.”  



평소 궁금했지만, 어디에다가 물어볼 곳이 없어 생각의 상자를 풀지 못하고 간직하고만 가지고 있었는데, 선배 덕분에 새로운 시선으로 창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의 만남이어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창문 이야기 덕에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질문은 내게 구세주였다. 어색한 상황도 편안하게 만들고, 오랜 공백의 시간도 좁힐 수 있었다. 질문을 통해 오랜만에 만난 선배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분야에서 20년을 일했으니, 전문가와의 인터뷰였던 셈이다.

주어진 점심시간이 끝이 나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동네까지 와서 맛있는 식사와 커피를 대접해 준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책 한 권을 카카오 톡으로 선물했다.    

 

“네 덕에 10년 만에 책 읽겠는걸? 독후감 써야 되는 건 아니지?”

“아니죠. 베고 자고 됩니다.”     




받은 것에 비하면 줄게 책 한 권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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