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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Nov 09. 2023

처음, 용돈은 얼마를 주어야 할까?


아이의 교우관계가 확장되는 청소년 시기가 되자, 용돈의 사용도 늘었다. 저학년 때에는 한 달에 2만 원의 용돈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었다. 커가면서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분식집도 가고, 문구점도 갔다. 독립적인 생활이 시작되자 지출이 늘었고, 용돈이 부족하다며 자주 부딪혔다. 얼마가 적당 한 건지 아이에게 물어도 잘 몰랐고, 나 역시 주변의 친구들과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답을 찾기 어려웠다.


학년에 맞게 5학년은 5만 원, 6학년은 6만 원 주는 집도 있었고, 일주일 별로 용돈을 주는 집도 있었고, 아이가 친구와 데이트할 때마다 몇 만 원씩 주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연예인은 아이에게 30만 원을 주고 그 안에서 모든 것(친구 생일선물, 자기 옷, 학용품 등등 )을 계획하고 쓰도록 하는 통 큰 방법을 쓰기도 했다. 찾아볼수록 더 헷갈렸다. 끌리는 방법이 없었다.


우리 가족에게 맞는 방법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 가는 게 좋은 듯했다. 일단 아이가 한 달 동안 얼마를 쓰는지 보기로 했다. 그래야 얼마가 적당한지 알 수 있었다. 구체적인 숫자 없이는 기준선을 찾기가 어려웠다. 10월, 체크카드를 하나 주고, 쓰는 대로 문자가 오도록 설정해서 한 달에 어떤 항목에 얼마를 쓰는지 알아보았다.      

편의점 2,400원

편의점 700원

편의점 1,400원

떡볶이 5,000원

아이스크림 할인점 500원

문구점 9,000원

마라탕 8,500원

음료수 3,700원

음료수 4,600원

편의점 600원

빵집 3,400원

탕후루 4,000원

아이스크림 할인점 1,200원

떡볶이 데이트 11,000원

알파 문구 2500

4D 영화 4,000원

마라탕 7,200원

편의점 1,200원

마라탕 7,500원

아이스크림 1,500원

마트에서 친구에게 쏘기 6,000원

-

총 85,900원 지출.    


 

대부분 먹는 것과 친구들과의 데이트, 문구류였다. 자기의 취미 생활에 필요한 항목(아이브 포토 카드, 응원 봉 등)은 따로 모은 돈에서 지출했다. 이렇게 구체적인 사용처를 보고 나니 서로 이해하기가 쉬웠다. 과거 한 달 용돈으로 2만 원을 주고,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몇만 원씩 더 주는 방법은 정확한 데이터가 보이지 않았다. 새로 시도해 본 이 방법은 서로가 수긍할 수 있는 정보가 있었다.

한 번이 끝이 아니라, 시범 기간으로 두 달을 더 시행해 보고, 가족회의를 거쳐 아이의 한 달 용돈을 정할 계획이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다. 여러 방면으로 그 전의 방식과는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 여름이 가면 여름옷을 넣어두고 가을옷을 꺼내듯, 아이의 성장에 따라 집 안의 규칙들도 재정비해야 한다.

용돈이 부족하다는 아이의 말에서 시작한 갈등이 몇 달은 이어졌다. 아이는 부족하다고 하고, 나는 매번 아껴 쓰라고 하는 등 의견을 좁히지 못해 얼굴 붉히는 일이 잦았는데, 함께 찾은 이 방법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생각이 만나는 방법이었다. 최종 임금협상이 남아 있긴 하지만, 데이터가 있으니 평온하게 마무리되지 않을까?


좀 더 크면 용돈을 더 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브랜드 옷에 관심이 없지만, 나중에는 좋은 옷과 신발을 가지고 싶어 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때에는 또 겨울옷을 꺼내듯 새로운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중요한 건, 각자의 가족에 맞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누군가의 방법이 내게는 맞지 않는 퍼즐일 수 있다.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과정 속에서 각자에 맞는 방법은 존재한다. 



잘 만들어진 시스템은 서로를 웃게 하고, 신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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