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여행에서
비행기에 타면 빠르게 앞, 뒤의 사람들을 살핀다. 아파트의 옆 집, 윗 집, 아랫집 사람들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과 같다. 비행시간 동안 잠깐의 이웃이 되는 사람들. 이웃을 잘 만나야 비행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그동안의 시간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아이는 타자마자, 기내에 어떤 드라마나 영화가 있는지 살폈다. 화면 터치가 잘 안 되는지 꾹꾹 누른 모양이었다. 잠시 뒤, 앞의 남자가 뒤를 돌아 아이를 쳐다보았다. 앞사람의 사인을 통해 아이가 화면을 세게 눌러 불편함이 전해졌다는 걸 알았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화면에 부착된 리모컨을 꺼내 아이에게 쓰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러면 화면을 누르지 않아도 되었다. 비행기 안이라는 좁은 공간은 서로 신경 쓰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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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구들과 기내 좌석을 젖히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주제는 < 비행기를 타면 좌석 등받이를 뒤로 젖힌다. 안 젖힌다.>였다.
나는 뒤로 젖히지 않는다. 쪽이었다. 그러는 이유는 나 편하자고 뒤로 확 젖혔을 때, 뒷사람의 공간이 너무 좁아진다는 걸 내가 경험했고 그것이 여행 내내 불편했다.
반면 친구는 뒤로 젖힌다고 했다. 항공사에서 의자를 그렇게 만든 건, 그렇게 사용하라고 만든 것이라고 했다. 뒷사람이 불편하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뒷사람도 뒤로 젖히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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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행기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다양한 일들이 더 밀도 있게 펼쳐진다. 호찌민을 가는 비행기. 나는 통로석에 앉았다. 내 옆에는 우리처럼 3인 가족이 앉았다. 남편과 5살 아이, 엄마가 앉았다. 보통 비행기에서 예민해지는 건, 앞, 뒤 사람들 때문이었다. 뒷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내 의자를 친다거나, 앞사람이 의자를 확 젖혔을 때가 불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옆 사람 때문에 힘들었다. 180미터가 넘는 남자. 좌석이 좁아 보일만큼 체격이 좋았다. 그는 앉자마자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그것도 살살이 아닌, 격렬하게.... 커다란 통나무가 흔들리는 보습이었다. 처음 보는 유형이었다. 내 시야각은 왜 이렇게 넓은 건지? 그가 다리를 떨 때마다 계속 눈길이 갔다. 안 보려고 노력해도 시선 끝이 흔들렸다.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지치겠지! 했다. 아니었다. 지치는 건 내 쪽이었다. 착륙할 때까지 5시간 넘게 다리를 떨었다. 기내식을 먹는 시간만 빼고... 밥 먹을 땐 안 떨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때 떨면 식판이 다 엎어졌겠지...
영화를 보려고 해도, 책을 읽어도 그가 떠는 다리가 보였다. 아예 그를 등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야에서 보이지 않으면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잠시, 옆으로 돌린 자세는 얼마 버티지 못했다. 허리가 아파왔다. 바른 자세를 하고 있으면 그의 떠는 다리가 보여 정신이 없었고, 몸을 틀면 시선은 자유로웠지만 근육이 아파왔다. 그는 비행 내내, 닌텐도를 하며 다리를 떨었다. 옆에 앉은 아이가 보채도 달래는 건 부인의 몫. 혼자 온 듯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여러 번, 비행기를 탔지만 이번 같은 유형은 처음이었다. 이런 일이 있다 보니,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내가 창가 쪽에 앉았다. 이번에도 불편함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앞사람이 좌석을 뒤로 확 젖혔다. 그런 일은 자주 있기에 이제 내가 적응을 해야 했다. 좌석 젖히기는 그날의 운과 같았다. 앞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 옆의 남편과 딸의 앞사람은 젖히기 않고 잠을 잤다.
다리 떠는 것보단 낫다 생각하며 가고 있는데, 비행기 좌석 경고등이 켜졌다. 한 할아버지가 화장실을 향해 걸어왔다. 화장실 뒤에 앉아 있던 승무원이
"손님 지금, 좌석 경고등이 켜져서 위험하니 어서 자리에 앉으셔야 해요."라고 안내했다. 할아버지는
"급한데, 어떻게 앉아? 내가 더 위험해." 버럭 화를 냈다.
모두가 무안해지는 장면이었다. 승무원은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별의 별일이 다 있는 곳이 비행기 안이었다. 언젠가 한 승무원에서 기내에서 제일 좋은 손님 유형을 물어본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타자마자 잠들어서, 내릴 때 깨는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손이 안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비행기 안의 대부분의 시간은 무미건조하다. 종종 기계음이 들리고, 안내방송이 들리지만 대부분 조용하다. 그 속에 즐거움을 찾는다면 기내식과 와인, 커피였다. 호찌민 가는 길에는 디저트로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나와서 아이와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뜻밖의 기쁨이었다. 돌아가는 길에도 아이스크림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식사가 다여서 아쉬워했다.
그렇게 마음을 접고 있는데 잠시 뒤, "간식 드시겠습니까?" 하고 구아바 캔음료와 프레첼 스낵을 주었다.
'이렇게 밀당을 하다니? 간식 안주는 줄 알았잖아요?' 처음 보는 프레첼스낵이었다. 먹는 순간 여행지에서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 고소해서, 인생 과자가 되었다. 집에 가서 또 먹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찾아보니, 직구로 파는 곳이 있었다. 만약 그 순간 잠이 들었다면 먹지 못했겠지? 승무원이 우리의 호들갑을 보고서는 "더 드시겠습니까?"물어왔고, 우리는 순한 강아지 마냥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비행기는 곧 인청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잠시 뒤, 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착륙은 모두가 긴장하는 순간인데, 아이의 울음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마치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위기의 순간에 깔린 배경음악 같았다. 나도 아이를 키워봐서 그 울음을 이해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찢어지는 소리는 함께 견뎌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이의 울음과 함께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을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바퀴가 지면을 닿을 때 붕 뜬 마음도 착륙했다.
비행을 마무리하는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떤 아이의 긴 울음소리를 함께 들은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옆에 있는 엄마에게 물었다.
"누가 때렸어?"
아이의 달콤한 말이 비행기 안에서 일어난 소설 같은 일들에 마침표를 찍었다. 귀여운 마침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