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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Aug 27. 2020

9살 선생님과 65살 학생

세대간에 일어나는 일

외할머니는 뜨개질 선생님이다. 몇십 년간 거미처럼 색색의 실로 줄을 엮는다. 모자, 헤어밴드, 귀걸이, 귀마개, 원피스, 목도리, 가방, 방석 등등 뜨개질의 세상은 끝이 없다.


손녀가 어릴 때부터 장난감부터 담요까지 필요한 것들을 다 만들어 주셨다. 아이는 뜨개질 조기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손가락이 섬세해지고 마음도 선명해진 아홉 살, 아이는 할머니에게 뜨개질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수학보다 어려운 뜨개질인 것도 모른 채 처음부터 좋아하는 강아지 인형을 만들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할머니가 말했다.


꿈도 야무지다.



아이의 부푼 꿈과 희망을 터트리고 싶지 않아 그 말 뜻을 아이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할머니 말이 어떤 일 것 같냐고 물었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꼼꼼히 이룰 수 있다. 아니야?”


아이의 핑크빛 말에 솔직하게 단어의 뜻을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첫 수업시간. 할머니는 손녀에게 가장 기본인 코 잡는 법을 알려주었다. 한 코, 한 코 잘 엮어야 땋은 머리 모양이 되었다. 아이는 처음 하는 거라 자꾸 코가 빠졌다. 다시 잡고, 다시 넣고를 반복했다. 콧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할머니, 이거 어렵네요.”

“그렇지? 쉽지 않지?”

“그래도 재미있어요.”


작은 밧줄을 한 손에 잡은 듯 코잡기만 한 시간을 반복했다. 코잡기에서 한 단계 높여서 한 줄의 코 옆에 또 한 줄의 코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섰다.  


“너무 복잡해요. 못하겠어요.”


40년 경력의 할머니의 재능 기부는 한 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수제비 반죽하는 법도 알려주고, 오이 써는 법도 알려주고, 수학도 가르쳐 주었다.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한 분야만큼은 예외였다.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는 손녀에게 핸드폰을 들고 가서는 자주 질문을 했다.  



“예린아, 이거를 이 안(앱을 폴더 안으로 넣기)으로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이걸 이렇게 누르고요 이 안으로 잡아당겨서 넣으면 돼요.”


“와이파이 연결 어떻게 한다고 했지?”

“이 낙하산 모양 같은 게 와이파이거든요. 이걸 누르시고 연결하시면 돼요.”   


 할머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엄마인 나도 종종 아이에게 물었다.

“예린아, 앱 많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

“그거? 이렇게 화면 올리기만 하면 돼.”

“이렇게 쉬운 거야?”

“당연하지.”



엄마와 나는 모르는 게 생길 때마다 핸드폰 과외 선생님을 찾았다. 아홉 살 선생님은 가끔 내게 특강까지 열어 주었다.


“엄마, 카톡이나 문자 보낼 때 일일이 쓰지 말고 음성으로 보내.”

“그건 음성 메시지잖아. 엄마 그거 싫어.”

“음성 메시지 아니고 문자 보낼 때 여기 마이크 표시 누르고 말로 하면 글씨가 저절로 써져.”

“진짜? 나 지금 처음 알았어.”


아홉 살 핸드폰 선생님은 유능했다. 모르는 게 없었다. 삼대 중 핸드폰 분야에서는 전문가였다. 몸속에 피와 함께 호기심이 흐르는 아이는 작은 핸드폰을 이리저리 눌러보며 숨은 기능까지 스스로 익혔다. 어릴 때 핸드폰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전화 기능만 되는 핸드폰을 사 주었는데도 말이다.



아이를 보며 나도, 할머니도 깜짝 놀랐다. 아이의 습득능력에 감탄했다. 가르친다는 것은 나이가 상관없었다. 세월의 숫자가 아닌 지식의 숫자가 중요한 법. 그 지식은 호기심의 양에서 나왔다.  


우리는 X,Y,Z 세대가 한 공간에 산다.

단어의 경계는 뚜렷하지만 삶의 경계는 없다.



세대 간의 소통이야 말로 뜨개질처럼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세대간이 잘 어울리면 아름다운 작품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만들어질 것이다.


아이가 엄마와 할머니에게 핸드폰의 세계를 다정하게 알려주니 몰랐던 세계가 열렸다. 그제야 있는지도 몰랐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세대 간의 문을 꽁꽁 닫는 것이 아니라 활짝 열어주는 일.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삶은 더 맛있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꿈도 야무지다: 희망이 너무 커 실현 가능성이 없음을 비꼬아 이르는 말>

<야무지다: 사람의 성질이나 행동 생김새 따위가 빈틈이 없이 꽤 단단하고 굳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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