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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Apr 14. 2022

모두에게 머리는 있다.

무엇이든 마음이 먼저 앞장서야 한다. 마음이 첫 발을 떼야 나머지 몸과 머리가 따라나선다. 아이가 학원을 보내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나, 수학, 영어학원 보내줘."라는 말이 나왔다. 본격적인 교과 수업이 시작되면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왜 학원이 가고 싶어 졌어?"

"학교에서 수업하는데, 뒤쳐지긴 싫어서... "


집단 안에서의 감정이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언젠가 j가 과외는 아이에게 맞춰서 진행해서 섬세하게 지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학원에서는 함께 공부하기 때문에 서로 자극이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무리 안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얽혀서 상호작용한다.


영어 학원은 파닉스가 되어 있지 않아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파닉스를 먼저 공부하고 와야 한다고 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학학원은 자리가 있어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연산 연습이 되어 있지 않아 문제를 푸는 속도가 많이 느리다고 했다. 아이의 마음을 기다리느라 우리는 제자리걸음이었지만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염려하는 수학선생님께 "아이가 스스로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잘 해내더라고요. 먼저 수학을 배우자고 했으니까, 선생님도 믿고 조금 기다려 주시면 잘 따라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옆에서 아이를 지켜본 모습을 말했다. 잘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마음의 버튼이 눌려지면 자발적으로 하려는 모습은 보아왔기에 수학학원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어릴 때부터 쭉 해온 아이들 사이에서 아이는 작은 좌절들을 많이 맛본 듯했다. 공부에 자신 없어했다. 몇 문제를 틀리는 건 상관이 없는데, 아이가 풀이 죽어 있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이 보기 힘들었다.


그럴 때면 늘 말했다.

"지금은 배워가는 과정이니까, 틀려도 괜찮아."

나의 말은 공허한 위로처럼 들린 듯, 아이는 여전히 속상해했다. 아이가 무리 안에서 느끼는 감정은 내가 밖에서 지켜보는 것과는 다른 것이란 걸 알았지만, 점수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월말이 되어 수학학원 선생님과 상담을 할 때며, 늘 속도가 느리다는 말을 들었다. 주어진 시간에서 정확하게 푸는 것이 중요한 교육 시스템에서 속도는 중요한 문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말 끝에는 "그래도 y가 공부머리가 있어요. 힘들어도 풀어보려고 노력하고, 속도는 느려도 푸는 문제만큼은 정확도가 높아요. 하려고 해서 예뻐요."

예쁘다는 말을 늘 마침표처럼 반복해서, 공부보다 아이를 예쁘게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 선생님을 신뢰했다.

하지만 공부머리가 있다는 말은, 나 역시 직접 본 장면이 아니기에, 믿지 못했다. 몇 달 반복되는 상담에서 선생님은 공부머리라는 단어를 계속 강조했다. 아이가 스스로 잘 못한다고 할 때마다


"수학 선생님이 너 공부머리가 있대. 알려주면 잘 이해하고, 풀어보려고 노력한다는데?"라는 말을 주문처럼 들려주었다.


말이 쌓이면 내 것이 아니던 말이 스며들어 내 것이 된다.   


몇 개월 후였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가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진짜 공부머리가 있는 것 같아."

늘 자신없던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진까?(그런 마음가짐의 말을 듣고 싶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수학이랑 영어를 늦게 시작했잖아. 근데 일찍 시작한 아이들보다 더 잘 풀어. 제일 잘하는 애 빼고 말이야."

"그래? 네가 그동안 열심히 해서 그런가보다."


아이의 마음가짐을 억지로 바꿀 수 없었다. 특히 스스로 생각하는 마음은 본인만 바꿀 수 있었다. 진짜 똑똑한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것보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길 바랬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머리'라는 단어는 용기를 주는 말이었다.


"넌 똑똑해서 잘해."가 아니라

"너에게 작은 씨앗(공부머리)이 있으니 열심히 해보렴."이라는 말과 같았다.


문득 사람은 누구에게나 머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머리

그림 머리

투자 머리 등등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나는 어떤 머리가 있을까? 고민했더니 친구가 "너는 쇼핑 머리가 있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니 적은 돈으로도 안목 있는 물건을 골라내는 쇼핑 머리가 있었다. 스스로에게 어떤 머리가 있는지 잘 모르는데, 타인은 나보다 더 잘 알 수도 있었다.


가끔 가족이 모여 닌텐도 게임을 하는데, 나는 늘 상대가 누구든, 모든 게임에서 졌다. 가끔 미로 찾기 게임은  이기기도 해서 작은 미소를 띄우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가 옆에서 말했다.


"엄마, 게임 머리 있네."


내게도 게임 머리라는 게 있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누구에게나 00 머리가 있다. 그 씨앗은 발견되기 어렵지만, 발견되기만 하면 싹을 틔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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