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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Aug 02. 2022

나무를 줍는 사람

하루, 하나의 시도



집에서 도서관을 가는 길에는 거대한 초록 터널이 있다. 겨울 내내 앙상한 나뭇가지는 여름이 되면 거대한 초록 우산을 펼쳐 놓는다. 그 길을 가는 길이면 시간의 숲을 걷는 기분이 든다. 투명한 초록이 겹쳐 짙은 도트무늬의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사람들의 손길, 발길이 닿지 않은 소나무의 정갈함을 바라본다.


태풍이 지나간 어느 날, 그 길에는 뾰족한 나뭇가지가 가득했다. 마치 오락게임을 하듯 이리저리 피해 가며 길 끝에 다다랐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고, 카페에 들러 시원한 수박 주스 한 잔을 마셨다. 여름의 수박 손질은 번거로워 큰 마음을 먹어야 하지만, 수박주스는 달달해서 자주 찾게 된다.

마트에 들러 우유를 산다. 평생 먹은 우유의 양은 얼마나 될까? 날마다 주기적으로 사는 것들을 바구니에 담았다. 간장, 계란, 커피우유, 치즈, 호박 등.

납작했던 장바구니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무거워진 풍선을, 가라앉는 풍선 바구니를 들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다시 마주한 초록 나무 길.


저 앞에 한 아주머니가 있다. 허리를 굽혀 눈앞에 있는 나뭇가지를 길 밖으로 던지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아까 내가 품은 마음이 다시 재생되었다. 성가진 나뭇가지를 귀찮아했던 마음. 그 마음이 내 길의 끝이었는데... 


'저런 방법도 있었구나.'


순간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한 번도 하지 못한 생각. 환경미화원의 일이라고 여기고 빨리 나뭇가지가 치워져야 할테데... 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뒤를 쫓아 그녀의 행동을 따라 했다. 그녀가 미처 치우지 못한 나뭇가지는 여전히 많았기에 큰 가지들 위주로 길 끝으로 옮겨 놓았다.


저 사람 대단하다고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한다.




하루 하나의 시도.
태풍의 영향으로 떠밀려 온 나뭇가지를 주웠다.




그 길은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었다. 학생들, 아이들, 노인들에게 모두 위험이 되었던 나뭇가지들.


가는 길 투덜댔던 내가, 오는 길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그 변화는 먼저 나뭇가지를 줍던 한 사람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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