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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Aug 19. 2022

집 안의 편의점

"나 외숙모랑 하루만 살아보고 싶어"


그 말의 뜻은 무엇일까? 가슴이 툭 하고 내려앉았다. 올케는 아이들을 살뜰히 챙긴다. 반찬도 늘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씻기기도 입히기도 열심히며, 살림도 잘한다. 아이에게 올케의 어떤 점이 좋았던 것일까?

생각하며 묻고 싶지 않았던 질문을 했다.


"왜?"

"외숙모랑 살면 창고에 먹을 것 가득하잖아. 나도 그런 집에 살고 싶어. 다 꺼내 먹게."


다행이었다. 내가 잘 못하는 요리가 아니어서...

올케의 집, 거실장에는 생필품이 많다. 샴푸, 섬유유연제, 물티슈, 지퍼백 칫솔이 가득 들어있다. 마트에 정렬되어 있는 것처럼 쪼르륵 예쁘게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냉장고를 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주스도 늘 구비되어 있다. 아이가 특히 부러워했던 건, 베란다 한쪽 선반을 가득 채운 각종 과자와 젤리, 캔디였다.


우리 집 아이는 간식을 너무 좋아해서 내가 잘 사다 놓지 않는다. 사더라도 조금씩 사다 놓았다. 그러니 아이의 입장에서는 늘 부족했던 모양이다. 밥도 잘 먹고, 간식도 잘 먹으면 나의 태도도 달라졌겠지만, 간식을 조금씩 사다 놓는 건 간식만 즐겨 먹고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툭 튀어나 온 아이의 진심이 내 마음을 쿡 찔렀다.

또 하나의 일도 더해졌다. <얼마면 되니?>라는 주제의 글쓰기를 하는데 그 안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얼마면 되니? >

294만조 원
-
아직 어려서 갖고 싶은 게 많은데.... 다 너무 비싸. ㅜㅠ
부자가 되어 돈을 팡팡 쓰고 싶어.



아이의 마음이 담긴, 말과 글을 읽다 보니 그 마음을 헤아려주고 싶었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했다.


'그래 외숙모처럼 날마다 가득 간식이 들어찬 창고를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한 번은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학원 끝나고 마트 갈까? 네가 사고 싶은 간식 다 사 줄게. 집에 편의점을 만들자."

"정말? 너무 행복해."


5학년 아이가 나를 폭 안으며 기뻐했다.

사춘기 소녀의 얼마만의 포옹인가?

학원이 끝나고 마트에서 만났다. 우리 집에서 제일 큰 여행가방을 건네며 마음껏 담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막상 담으라니까 못 고르겠네.. 하고 망설이더니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다.


"엄마 젤리랑 사탕도 돼?"

"응 다 돼. 마음껏 담아."



쿨하게 말하고 나는 필요한 생필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이의 과자 쇼핑은 끝나지 않았다. 그 순간 스멀스멀 좀스런 마음이 피어올랐다.


'내가 너무 큰 가방을 가져왔나?'

가방에 담아도 담아도 잘 안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아이는 쇼핑을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방이 가득 찰 때쯤 계산대로 향했다. 아이는 이래도 되나 싶은 표정으로 숫자들을 바라보았다.


33800원

생각보다 적은 숫자였다.



이렇게 풍요로운 행복이 있었는데, 그동안 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까?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절제하는 마음으로 꼭꼭 조이며 살았다. 집으로 가는 길, 학원 친구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커다란 가방을 쓱 보여주며


"먹고 싶은 과자, 하나 골라봐."라고 말하며

나누어 가졌다.


너무 무거워 다른 가방에 과자를 나누어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카트를 정리하고 그 안에 과자들을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1층은 젤리, 초콜릿, 2층은 각 과자, 3층은 봉지과자를 넣었다.



차곡차곡 정리할 때마다 웃음도 차곡차곡 쌓여 갔다.

내 마음만 바꾸면 쉽게 들어줄 수 있는 아이의 바람이었는데,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다.



엄마라는 자리에서 절제에만 포커스를 맞추며 살았다. 물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했지만 그건 아이의 우선순위 밖의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욕망의 순위가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순위가 매겨져 표현된다면 1위의 것들을 들어줄 수 있지만, 우리는 서로의 욕망의 순위는 잘 알지 못한다. 나는 하느라고 한 것이 아이의 성에 안 차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착은 함께 하는 시간의 길이보다
공감이 중요하다

ㅡ관계를 읽는 시간 중ㅡ


제트 클럽에서 택이네님이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와 얼마나 많은 공감을 했을까?

과자 봉지를 보며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스치지 않고 들을 수 있다. 한 번 말해서 듣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면 안 된다. 일상은 너무 복잡하고, 수많은 일들이 존재하기에 어떤 것이 큰 마음인지 알아채기 힘들다.


아이의 투정에서, 글에서 알아채고 이제라도 들어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집에는 작은 편의점 하나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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