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젓가락질을 잘 못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엉성한 젓가락질로 밥을 먹는다. 혼자 밥을 먹을 때에는 괜찮은데 여럿이 함께 할 때는 신경이 쓰인다. 도라지를 집다가 떨어뜨리고, 감자조림을 집다가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떨어진 반찬을 집는 건 더 어려운 일. 모두가 나를 집중하면
계속 반찬을 놓친다.
젓가락질을 못하니 아이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쳐주지 못했다. 남편은 젓가락질을 잘했지만, 아이의 젓가락질에 신경 쓰지 않았다.
추석. 온 친척이 다 모여 식사를 하는데, 어른들이 아이의 젓가락질을 보고 한 마디씩 했다.
"6학년인데 젓가락질을 아직도 못하는 거야?"
"이렇게 잡아봐."
"젓가락질은 배워야지.얘봐. 어린애들도 잘하는데."
아이는 수많은 말들에 포위되었다. 자신을 향한 질타 같은 집중에 아이가 금방 눈물을 쏟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밥이 얹히는 줄 알았다.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이런 상황에 놓인 것 같았다. 왜 어른들은 다정한 말로 이야기하지 않고 혼내듯이야기할까? 식사시간이 끝나고, 아이의귀가 빨개져 있었다.바로 다독이면 감정이 요동칠 것 같아서,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괜찮냐고 물었다.
"응. 괜찮아. 나도 평소에 젓가락질 잘하고 싶었어."
그랬구나. 처음 알게 된 아이의 마음이었다. 어떤 순간은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아이는 맹연습에 들어갔다. 관심 없던 남편도 아이가 가르쳐 달라고 하니 잘 알려주었다. 초반에는 안되던걸 하려니 반찬을 자주 떨어뜨렸다. 오징어포도 얇아 잘 잡히지 않았고, 두부는 자꾸 부서졌다. 아이는 버거워서 스스로 화를 내다가도 계속 연습했다. 콩자반이 나오는 날은 집중적으로 젓가락질을 연습했다. 반찬을 집는데 집중하다 보니 식사시간은 마치 경기연습시간 같았고, 먹는 속도도 느려졌다. 나는 가끔 그냥 빨리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설까지는 연습해서 보여줄 거야."
"그때 되면 어른들은 그 이야기하는 줄도 모르고
까먹었을 거야"
"그래도."
"보여주는 목적 말고도 너 스스로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과정에 집중 하는 게 더 의미 있는 것 같아."
설이 되었고, 한 자리에 모인 친척들은 아이의 젓가락질에 관심이 없었다. 피드백을 받길 원했던 아이는 나의 조언으로 마음의 준비가 된 듯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우리의 일상에서 젓가락질에 관한 주제는 서서히 희미해졌다. 어느 날, 중학생이 된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는내게 말했다.
"엄마 오늘 지유가 나보고 젓가락질 잘한대."
설날에 받지 못한 피드백을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받았다.지금 만난 친구들은 아이가 원래부터 젓가락질을 잘하는 줄 안다.
조용히 연습의 시간을 통과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노력해서 변할 수 있었다.
작은 꾸지람에서 시작한 젓가락질은아이게게 무언가 결심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여전히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라고 묻지만
아이는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어요.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젠 내가 아이에게 젓가락질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