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바다를 품은 짬뽕이 나왔다. 껍질에서 홍합 살을 발라내고, 미니낙지를 가위로 자른 후, 가장 좋아하는 솔방울 모양의 오징어 하나를 집어 남편의 짜장면 그릇에 올려놓았다. “여보, 이거 플러팅이야.”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중학생 딸이 시크하게 말한다.
“15년 차 부부도 플러팅 해?”
요즘 미디어에서 플러팅이란 단어가 자주 들렸다. 상대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행위로, 플러팅 장인으로는 덱스가 유명하다. 유퀴즈에서 덱스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제가 프러팅남으로 불리다 보니, 어느 날 혼자 고민해 보았어요. 내가 그렇게 아무나 꼬시는 사람인가? 근데 그게 아니고, 현재 이 사회가 칭찬에 너무 야박하지 않나요? 저는 그냥 상대의 좋은 점을 짚어주고 말해주고 싶을 뿐인데, 그걸 플러팅이라고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이제 어딜 가서 칭찬을 못 하겠더라고요.”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순수한 의도가 플러팅이라고 받아들여서 아쉽다고 했다. 덱스의 말대로 사람들 사이에 다정한 눈빛과 행동이 흔하지 않다 보니, 누군가 덱스에게 그런 배려를 받으면 “저 사람 혹시 나 좋아하나?” 오해하는 듯했다.
문득, 플러팅의 종착역은 결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다른 방식의 플러팅을 했기에 두 사람이 결혼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결혼이 플러팅의 절정기라면, 결혼 후에는 하강기, 나아가 소멸기로 돌입한다. 어쩌면 플러팅이 존재하고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플러팅은 미혼남녀만 쓰는 단어일까? 유부남, 유부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플러팅하면 곤란하지만(깻잎 논쟁처럼) 부부가 서로에게 플러팅한다면 어떨까? 이 생각이 계기가 되어서 평소에 남편에게 하던 행동에 ‘플러팅’이라는 이름표를 달아 보았다. 전에는 말없이 남편의 입가에 묻은 김칫국물을 닦아주었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여보 김칫국물이 묻었네? 내가 닦아줄게. 이거 플러팅이야.”
스웨터 안에 한쪽만 들어간 와이셔츠 깃을 빼주며 “여보. 이거 플러팅이야.”
마트에 가서 남편이 좋아하는 새우깡을 사서 건네며 “이거 플러팅이야.”
차에 타서 온열 시트를 틀어주며 “이거 플러팅이야.”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남편의 행동들도 다 플러팅이었다. 편지 플러팅, 꽃다발 플러팅, 무거운 짐 들어주기 플러팅, 분리수거 플러팅 등. 부부가 삶 속에서 했던 대부분의 행동이 배려고, 사랑이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뿐이다.
결혼 전, 많은 사람들에게 남발하는 플러팅은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조심히 해야 하지만, 부부 사이에는 플러팅을 남발해야 한다. 그래야 무미건조한 사이가 미스트를 뿌린 듯 촉촉해진다.
오늘을 남편에게 어떤 플러팅을 할까? 고민한다.
오징어 국 플러팅을 할까?
잠들기 전, 얼굴에 팩 올려주기 플러팅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