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국에 나가면 네 살이 된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게 있으면 거침없이 물어보고, 부당한 것(물건이 계산이 잘못된 거)이 있으면 바로잡았다. 처음 보는 직원에게도 고민 없이 유머를 건네고, 친구와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눈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쉽게 전하고 책을 읽으며 사유의 강을 건넌다. 하지만 외국에 가면 이런 나는 없다.
여행(외국)을 가서 방긋 웃는 호텔 직원과 스몰토크도 하고 싶고, 마트에서 고기와 어울리는 와인이 어떤 건지 묻고 싶지만 듣기만 할 뿐, 입을 떼지 못한다. 그나마 배운 수능 영어로 상대의 말의 뉘앙스를 알아차릴 수 있지만, 나아가는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꼭 영어를 배워야지 결심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면 금방 잊었다. ‘한국말만 맛있게 하면 되지.’라고 생각을 덮어씌우다가, 또 여행 가서는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이런 경험을 쌓이면서 자책하는 대신,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외국에 가서 소통을 잘 못 하는 것에 속상해하지 말자. 대신 한국에서 풍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자. 한국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스몰토킹을 하고, 궁금한 건 바로바로 묻는다. 외국이면 불가능하지만, 한국에서 마음껏 할 수 있다. 결핍으로 인해 현재를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려고 스타벅스에 갔다. 점심이 끝난 시간, 사람들이 많았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타벅스 리저브 직원이 내가 시킨 콜드브루를 건네며
“오늘 옷이 화사하니 너무 예뻐요.”
“아, 감사합니다.”
“봄이 벌써 왔나 봐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마음에 꽃을 피웠다. 커피를 마시는 내내 향긋한 말이 맴돌았다. 종종 말 선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그림까지 그려가면 설명해준 사람도 있었고, 코스트코에서 계산하고 나오는데 딸과 커플룩이 잘 어울린다며 방긋 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동안의 말 선물은 스치기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말에 보답하고 싶었다.
외국에서 친절한 사람들이 베푼 호의에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스웨덴에서 지하철인 줄 알고 안 열리는 철문을 열려고 낑낑거릴 때, 한 분이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었는데, 알고 보니 주차장이었다. 놀라서 황급히 나왔는데, 그 모습을 본 그녀가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지하철에 간다니까 직접 걸어가며 안내해 주었다. 그 순간, 넘치게 받은 마음을 쏟아지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땡큐”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는 한국이고, 나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받은 호의에 대해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
내 손에는 스타벅스에 가기 전에 샀던 노랑색의 겹튤립이 있었다. 가방 속에 있던 포스트잇에 마음을 가득 담아 글을 썼고, 집에 가는 길 그 직원을 찾았다. 혹시 교대로 퇴근했을까, 마음 졸였는데 기다리니 그분이 프런트 뒤편에서 나왔다. 튀어나오는 쑥스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다가갔다.
“아까 해준 말이 너무 예뻐서, 마음에 꽃이 폈어요. 그래서 이 꽃을 드리려고요.”
“선물 받은 꽃 아니에요?”
“아니요. 제가 보려고 산 꽃인데 드리고 싶어서요.”
“감사합니다.”
낯선 사람에게 처음 꽃을 내밀었다. 받은 마음을 주머니에 넣고 떠나는 대신, 꺼내어 건넸다. 우리가 스치는 일들은 날씨 같아서 반짝 해가 드는 순간은 찰나다. 우중충한 날들에 빛나는 햇살을 만끽해야 한다.
말을 건네는 것도, 마음을 전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전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순간이었다. 용기를 가진 두 사람이 마음을 주고받았다. 외국에서는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꽁꽁 동여매야 했지만, 한국에서는 마음을 펼쳐 예쁜 모양으로 접어 선물할 수 있었다. 많은 여행에서 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 여기에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