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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25. 2024

납작한 봉투 속에 든 폭신한 마음

명절이 되면 은행 CD기에 들러 급하게 돈을 뽑는다. 돈을 봉투에 넣으려고 하면, cd기계 옆에 있는 봉투가 없었다. 명절에는 누구나 봉투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넘처나는 봉투도 필요할 때면 없었다. 한 장만 필요한데, 딱 한 장이면 되는데... 언젠가 구겨진 봉투에 담긴 돈을 받은 적이 있다. 급박한 상황이었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도 같이 구겨졌다. 봉투는 마음의 옷. 봉투에 따라 마음이 다르게 전해졌다. 그 후, 이왕이면 돈은 예쁜 봉투에 넣어 주자고 마음먹었다.


다이소에 가면 가장 먼저 봉투가 있는 곳을 향한다. 휴지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사두듯 봉투도 평소에 미리 사 둔다. 시즌마다 봉투 디자인도 달라져서 다이소에 갈 때마다 하나씩 사 모은다. 한 묶음에 3-5개 들어 있어서 예쁜 건 친구들과 나눠 갖는다. 그렇게 사둔 봉투는 매달 찾아오는 양가 부모님의 생신, 어버이날, 조카의 생일, 친척 행사 등에 요긴하게 쓴다. 예쁜 봉투에 돈을 넣어 드리면 반응이 좋다. 부모님들은 꽃무늬가 아름다워서 웃고, 내용물(돈)을 보고 함박웃음 지었다. 예쁜 봉투와 돈의 조화는 중요했다. 어떤 날은 엄마에게 드린 봉투가 내게 돌아온 적도 있었다. 생신 용돈으로 드린 체크무늬 봉투에 아이의 어린이날 용돈이 담겨 돌아왔다.


“이거 내가 준 것 아니야?”

“그래? 봉투가 너무 예뻐서 못 버리겠어. 깨끗하니까 모아두었다가 이모네 갈 때도 쓰고, 중연이한테도 쓰고 해.”


돌고 도는 봉투였다. 재활용하면 엄마가 따로 봉투를 사러 가는 수고로움도 덜었다. 봉투 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다낭을 여행할 때였다. 현지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로비부터 방 안까지 거대한 초록 식물이 가득해서 활기가 넘쳤다. 마지막 날, 체크 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가려는데, 직원이 우리에게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은 아이가 그려진 엽서와 빨강 봉투 하나를 건넸다. 선물이라고 했다. 엽서 안에는 연필로 연하게 선을 긋고 그 위에 정성스럽게 쓴 글이 있었다. 글씨를 삐뚤빼뚤하게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Dear Hayeon!

Thank you for choosing to stay with us.

Hope you have had a wonderful time here in Da Nang.

Have a safe flight back and wish you all the best in ahead New year.

Best regard!


함께 준 빨강 봉투 안에는 베트남 돈도 들어있었다. 베트남에도 새해에 세뱃돈을 주는 문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타지에서 세뱃돈을 받을 줄이야….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많은 숙소에 머물렀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스쳐 가는 관광객일 뿐인데,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호스트가 봉투와 엽서를 고르고, 한 글자씩 종이에 써 내려간 시간이 떠올랐다. 글씨는 또 얼마나 예쁜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책 안에 껴 놓았다. 봉투는 납작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쿠션처럼 폭신했다. 그 후, 봉투 앞에만 서면 다낭에서 받은 사랑스러운 순간을 떠올린다. 내가 받은 마음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어 오늘도 최선을 다해 봉투를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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