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또 배워도 모르는 것이 많다. 새로운 사실을 알 때면 몰랐던 부끄러움과 배움의 기쁨이 동시에 생긴다.
중학생 딸의 학부모교육을 받으러 학교에 갔다. 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독서토론을 할 수 있도록 반마다 학부모 리더를 뽑았다.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역할이었다. 학교 도서관에 도착하자, 1, 2, 3학년 학부모들이 모여 있었다. 교장 선생님 그곳에 온 사람들 모든 부모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한 선생님이 말하길,
“학년 대표만 드리자고 제안했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일 년 동안 애써주시는 것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 드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 이야기를 아이에게 전했더니,
“교장 선생님 좋은 분이셔. 등교 시간에 늘 교문에 나와 계시고, 점심시간에도 급식실에서 아이들과 대화도 나눠.”
학교에 가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학생과 학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임명장을 받는 과정에서 한 반에 엄마, 아빠가 다 참여하는 사람이 있었다. 순간
‘아빠도 참여할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토론 활동은 주말, 줌으로도 할 수 있다는 공지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게 되면 당연히 나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니까, 참여할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른 아빠들도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협소했던 생각을 자각할 수 있었다. 엄마, 아빠가 함께 아이 반에 리더로 활동하는 건, 부분적이 모습일 수 있었지만 가정의 자발적이고, 평등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독서토론의 한 달에 한 번, 1년 동안 8번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결정하기까지 여러 생각의 방지턱을 넘었다.
내가 책 준비를 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잘 따라줄까?
도움이 될까? 등.
행동하려면 고민을 줄이고 직접 부딪혀야 한다. 어른들 독서 모임을 자주 다녔으니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냐고 생각의 키를 바꾸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책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학교에서 책을 선정하고 토론할 발제문까지 준비해 준다고 하니,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독서토론을 진행하기 전 학교에서 학부모교육이 이루어졌다. 토론의 방법을 설명해주고, 진행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관해 이야기했다.
1. 토론자(학생들)에게 기대하지 말자
2. 토론 품질도 기대하지 말자
3. 토론자 모두가 말하고 싶어 하리라 환상을 갖지 말자
4. 상처받지 말자.
잘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모두 예상을 빗나간 말들이었다.
“독서토론의 목적은 아이들이 즐겁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있어요. 수행평가에 들어가는 활동이 아니기에, 아이들이 모임에 참여하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책 읽는 게 원치 않은 일이니 귀찮을 수 있어요. 그러니 꼭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좋아요. 하나의 책을 읽고 친구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한 마디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성공한 시간입니다.
책을 다 읽고 오지 않은 친구들도 있어요. 그래서 발제문 앞, 뒤로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함께 실어 놓았습니다. 아이들이 다 열심히 참여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해요. 물론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 친구들이 내 자녀가 아닐 뿐이죠. 또 책을 안 읽고 오는 일도 있어요. 학생이 선생님, 저 책 안 읽었는데요. 하면 솔직히 말해주어서 고맙구나. 라고 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이건 독서토론에 대한 태도인 동시에,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의견을 말하면, 그 의견에 대해 피드백하지 않고, 담백하게 진행만 합니다. 아이들 의견을 진행자가 정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말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는 말이었다. 얼마 전, 성인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모든 글과 말에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분에게는 길게 피드백하고, 어떤 분에게는 짧게 피드백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어도 되었다. 물론 피드백이 필요한 과정이 있지만, 참여자의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다. 균형감을 잃은 피드백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여러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도 수업이 될 수 있었다.
독서토론 교육을 들으며 다짐했다. 맛있지만 톡 쏘는 사이다 같은 진행 대신, 담백한 보리차 같은 진행을 해보자. 아이들이 저마다의 맛을 가진 음식이라면, 목이 마를 때, 가끔 들이켜는 보리차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독서토론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곧 시작하는 드라마의 예고편이 나간 기분. 어떤 주인공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