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운명이 겹치면 사랑이 됩니다. 처음부터 가챠(캡슐 토이)에 빠진 건 아니었습니다. 나고야의 돈키호테에서 물건을 계산하는데 줄이 길더라고요. 기다리는 동안 지루했죠. 그때, 눈에 들어온 건 계산하는 줄 옆에 있던 장난감 뽑기(가챠)였습니다. 일본 여행을 많이 했지만, 한 번도 가챠를 해 본 적은 없었어요. 관심 밖의 일이었죠. 가챠 뽑기 안에 좋아하는 반지가 있었습니다. 한번 해 볼까?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400엔을 넣고, 있는 힘껏 레버를 돌렸습니다. 원하는 것이 나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관심도 없었는데, 순간 몰입하는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었습니다. 다섯 개의 도넛 반지 중 가지고 싶은 초콜릿 도넛 반지가 나왔습니다. 반지를 손가락에 껴 보고, 달달한 향이 날까 냄새를 맡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대로 즐거움을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400엔을 기계에 넣고 돌렸습니다. ‘도르르(손잡이 돌아가는 소리)’ 이번에는 전과 같은 도넛 반지가 나왔습니다. 그럼 그렇죠? 비눗방울 같던 무지갯빛 행복은 순식간에 ‘퐁’하고 터졌습니다.
그 후, 가챠의 세계에 빠졌습니다. 상점가를 지날 때면, 투명한 벽처럼 펼쳐진 가챠 기계에 저절로 눈이 갔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장소였는데, 자꾸 멈췄습니다. 가게 안, 수백 개의 가챠 중 반지 가챠만 찾았습니다. 다른 건 관심 없었죠. 새 모양의 반지, 미피 반지, 과자 반지, 짱구 반지 등이 있었습니다. 한 바퀴 돌며 훑어보니, 취향에 맞는 반지를 골라 뽑았습니다. 이때가 가챠 진입 1단계였습니다. 나름의 절제미가 있습니다.
가챠 진입 2단계는 뭐라도 예쁘면 뽑습니다. 나고야 여행 후, 일 년 뒤 마쓰야마에 갔을 때였습니다. 관광지를 검색하다가 가챠광의 블로그 포스팅을 보았습니다. 마쓰야마에 있는 대형 가챠 가게 세 곳을 소개하더군요. 일부러 가챠샵을 찾아가진 않겠지만, 그 근처로 가게 되면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장소를 저장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검색해 보니 가챠샵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챠샵에 들렀습니다. 가볍게 들어갔는데 양손 무겁게 나왔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것들이 많았다니요? 헬로키티, 미피, 미키마우스, 스누피 등 좋아하는 캐릭터가 다 모여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미니 피아노도 색깔별로 있었고, 맥주 마시는 자유의 여신상, 겨드랑이에 데오드란트 뿌리는 여신상 등 위트 있는 장난감도 있었습니다. 우주같이 광활한 가챠의 세계에 빨려 들어가는 건 몇 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챠 진입 3단계는 절제가 사라집니다. 예쁘고 귀여우면 나도 모르게 동전을 넣습니다. 정신을 차리는 데에는 시차가 필요했습니다. 저만 정신을 못 차리는 건 아니었습니다. 딸은 도마뱀, 강아지, 다람쥐 등 동물 인형에 빠져 있었고, 남편은 건담 가챠에 환호했습니다. 여행하다 보면 가족의 취향은 달랐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은 거의 없었죠. 제가 좋아하는 미술관에 가면 아이는 심드렁했고, 남편이 좋아하는 전자제품 가게에 가면 저와 아이는 심심했습니다. 하지만 가챠는 가족 모두를 품었습니다. 시작은 저 혼자의 재미였지만, 그 끝은 가족 모두의 취미가 되었습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가챠 원정대가 되었습니다. 길을 지나가다가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챠샵을 발견하면 소리쳤습니다. 결국 마쓰야마의 3대 가챠샵을 다 가보았습니다. 가챠 하러 여행 간 사람들 같았죠. 여행의 제목은 <아차, 가챠> 여행이라고 지을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기대하지 않았던 공항의 가챠샵을 발견하고 완벽한 여행이었다며 엄지를 추켜올렸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몇 주가 지나도 가챠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못 뽑은 건담 가챠가 있다며 한국에도 건담을 뽑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확정형 가차샵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가챠는 뽑기 형식으로 무엇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데, 확정형은 가챠샵은 가챠가 박스에 담겨 있어서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20% 확률이 아닌 100%의 행복이었죠. 주말, 안양에 있는 가챠샵(와이더샵)으로 갔습니다. 거대한 창고 같은 문방구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가챠가챠’ 손잡이 돌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작은 대화소리만 들렸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이 있는지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빈티지가구 시리즈의 가챠도 있고, 톰과 제리 키링도 있고, 요가하는 헬로키티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건담을 보더니 신이 났습니다. “여기 다 있어. 일본 안 가도 되겠는걸.” 신나던 것도 잠시, 원하는 모델은 다 팔리고 없었습니다. 저의 위시 리스트인 핑크색의 헬로키티도 인기가 많았는지 다 팔렸고, 6개 세트로만 판다고 했습니다. 하나를 사기 위해 5개의 소비를 해야 했죠. 그럴 순 없었습니다. 다른 가챠를 장바구니에 가득 넣었다가 다 빼고 3개만 남겼습니다. 그때는 집 나간 이성이 돌아오더군요.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 산 가챠들을 진열장에 놓는데,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원하는 걸 가졌는데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거지?’ 이상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가챠 안에는 장난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뽑기 전의 설렘, 내가 원하는 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대감과 간절함, 손잡이를 돌릴 때의 두근거림, 나온 플라스틱 통을 까기 전의 콩닥거림, 딸깍 소리를 내며 가챠 안을 열어 볼 때의 환희(원하는 것 나올 때), 실망(안 나왔을 때), 다시 기대(또 뽑으면 나오겠지), 다시 실망(왜 또 했을까), 마지막 기대(이번에는 진짜 나오겠지), 극강의 행복(드디어 나왔어. 내 이럴 줄 알았어. 세계 부자 안 부러워)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확정형 가챠에는 그 모든 감정이 쏙 빠져 있었습니다. 가챠의 본질은 귀여운 물건뿐 아니라 모든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의 서사가 빠진 (확정형) 가챠는 재미가 빠져 있었습니다.
가챠를 통해 배웁니다. 한 번에 얻은 성취는 확정형 가챠처럼 깔끔하고 만족스럽습니다. 레버를 돌려 얻는 가챠 같은 성취는 도전하고, 헤매고, 좌절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깔끔하진 않지만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삶이 풍성해집니다. 삶은 가챠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시행착오로 의미가 생깁니다.
만약 여러분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가챠와 확정형 가챠 중 어느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 기록해 볼까요? 가챠그림일기
그날 산 가챠를 사진으로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