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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휴지심을 갈다

휴지심

by 하하연

이상했다.



어느 순간부터 화장실의 휴지를 나만 가는 것 같았다. 거실 화장실은 아이와 나 둘이 쓰기 때문에(안방 화장실은 남편 전용), 내가 휴지를 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은 아이가 갈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전에는 내가 이렇게 자주 갈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늘 내가 화장지의 마지막 장을 썼다.


“린아, 요즘 화장실 화장지 간 적 있어?”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지? 날마다 내가 가는 것 같아.”

“사실 내가 거의 마지막 장을 쓸 때는 다 안 떨어지게 조금 써.”

“왜?”

“갈기 싫어서.”



몇 달 동안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던 것도 놀라운데, 아이의 말이 더 놀라웠다. 휴지 갈기가 귀찮아서 한 장으로 해결한 적도 있다니...

“우리 둘이 같이 쓰는 건데, 일부러 안 가는 건 배려가 부족한 행동 같아. 다음부터는 네 차례가 되면 네가 휴지를 바꿔줘.”

“알았어.”



단지 귀찮아서 그런 것이었다고 솔직히 얘기해줘서 고맙기도 했고 당혹스러웠다.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사실 휴지 하나일 뿐인데, 그때부터 내게는 좀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귀찮아서, 계속 미뤄왔다니...

휴지심이 뭐길래...


그 일이 있고 난 뒤, 유튜브에서 <두 아이 서울대, 카이스트 보낸 엄마가 어릴 때부터 챙긴 ‘이것’>이란 주제의 영상을 보았다. 유정임 저자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했다. 아이가 어릴 때, 배달원분들에게 음식을 받고 현관문이 닫히면 바로 보조키를 ‘철컹’ 걸어 잠그는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우리를 위해 집까지 음식을 가져다주신 고마운 분이야. 네가 입장을 바꿔서 아저씨가 되어보렴. 음식을 건네자마자 보조키가 탁하고 닫히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마음일 것 같니? 좋지 않겠지? 다음부터는 아저씨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면, 그때 문을 걸어 잠그렴.”


사회자가 말했다.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알려주셨군요?”


“네. 그 일이 있고 어떤 날은 음식이 벌써 식탁 위에 놓여있는데, 아이가 안 오는 거예요. 왜 안 오나 가봤더니 아이가 현관문에 귀를 갖다 대고 있더라고요.”



이 일화를 들으니, 아이는 여전히 배우고 있는 중이기에 부모로서 순간마다 잘 알려 주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휴지심을 갈지 않아서 실망한 마음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방향을 알려 주었으니 앞으로 잘 하면 된 것이다.


그 후 무심했던 휴지에 민감해졌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그날은 새 휴지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선반에는 빈 휴지심이 놓여있었다.



변화한 모습을 칭찬하며

다음에는 휴지심을 가지고 나와 종이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했다.


부모가 옆 사람의 물을 따라주는 모습을 보면,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배우고 뒷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면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따라 배울 수 있다.


화장실은 독립적인 공간이어서 보고 배울 수 없을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밥 먹기 전 손을 씻고, 양치질 방법을 가르치듯 배려도 가르쳐야 했다.


짐이 없는 사람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친구의 가방이 무거우면 나누어 든다.

식당에 가서 누군가 수저를 놓으면 누군가는 물을 따른다.

마지막 나오는 사람이 집 안의 불을 끈다.

등등


당연한 배려는 없다.

서로의 마음을 살피며 애써야 한다.



배려 없는 어른이 되기 전,

배려조기교육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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