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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09. 2020

처음, 친절에 감동하다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 사용설명서가 있었다.





본인이 원하는 물건을 살 때에는 아빠와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엄마와 가면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싸다, 다음에 사자 등등의 이유로 본인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없다고 했다. 아빠의 적당한 무신경함이 아이의 쇼핑에 적합하다는 것을 시간의 통계로 아는 듯했다.   

  

이사할 집을 알아보러 네 곳의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부동산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루를 꽉꽉 채워 사는 남편은 근처에 서울에 온 김에 아이의 피아노를 보자고 했다. 며칠 후가 아이의 생일이었다. 꽉 찬 일정으로 지치긴 했지만 다시 피아노를 알아보러 집이 있는 동탄에서 서울로 오는 것보다 온 김에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회사 동료 정보로 피아노 종류가 많다는 잠실 롯데 몰의 하이마트 매장에 들렀다. 한 바퀴를 둘러보아도 피아노는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의 가전제품만  보였다. 직원에게 물어보자 피아노 매장은 없다고 했다. 남편은 동료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그곳이 맞는다고 했다. 미궁에 빠지기 시작했다.    


다시 점원에게 물어보니 원래 피아노 매장이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했다. 아이가 피아노를 살 생각에 둥둥 떠다니다가 매장이 없다는 사실에 빛나던 얼굴이 포일처럼 구겨졌다. 나는 급하게 검색을 했다. 아이의 기대에 심폐소생술이 필요했다. 근처의 롯데백화점에 <야마하> 매장이 있었다. 헛걸음을 방지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순간 나도 맥이 풀렸는지 다리가 아파왔다. 이미 지쳐서 더 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좀 앉아 있을 테니 둘이 다녀오라고 했다. 아이는 피아노를 살 생각에 없던 힘도 생겨나서 그러겠다고 했다. 아빠는 함께 가자고 했다. 둘이 샀다가 나중에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어뜩하냐고 했다. 아이가 말했다.    


“아빠 둘이 가자. 어차피 엄마 마음에 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마음에 드는 거 사야 하잖아.”    


지금은 엄마 사용설명서가 아닌 아빠 사용설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반짝였다. 아빠는 그러자며 둘이 스머프처럼 춤을 추며 사라졌다. 나는 굴러다니는 검은 봉지가 되어 축 늘어진 채 의자에 앉았다. 얼마 후 내게 피아노 사진들이 전송되었다. 아이가 좋아하면 된 것이기에 다 괜찮아 보였다. 동시에 나의 손가락은 최저가를 찾아 문어처럼 움직였다. 늘 그렇듯 정가를 주고 사면 손해를 보는 것 같았다. 같은 브랜드의 피아노가 50만 원은 더 쌌다. 남편에게 그 사진을 전송했다. 조금 더 생각해보고 사자고 했다. 남편도 내가 아닌 숫자가 설득을 한 듯 아이에게 팥빙수를 먹으며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둘러대며 발걸음을 옮겼다. 둘은 나를 보자마자 피아노의 음색이 너무 좋다며 건반의 싱싱함을 이야기했다.     


카페에 들러 팥빙수를 먹으며 아빠는 피아노 검색에 들어갔다. 내가 아까 보낸 피아노 사진은 키보드만 있는 것이라고 했다. 둘이 보고 온 모델은 인터넷가로 10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고 했다. 내가 제안했다.


“그러면 백화점 행사가 있는지 물어봐? 100만 원 이상 구입하면 10만 원 상품권을 주는지?”   

 

매장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행사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싼 인터넷에서 사야지 주춤거리는 남편이 이상했다. 팥빙수를 마시듯 해치우고 나와 집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아무래도 아까 백화점 매장에 가서 사고 싶다고 했다.     


“우리에게 설명해준 직원 분이 할아버지셨는데, 엄청 친절하셨어. 피아노의 버튼들을 하나씩 눌러가며 그 차이점도 설명해 주시고 다른 피아노도 마음껏 치며 음색도 비교해주셨어. 오랜 시간 정성껏 설명해 준 그분께 구입하고 싶어.”    


그 말을 듣고서야 이해가 갔다. 그 자리에 없던 나는 그분의 온기를 알 리 없었다. 옆에서 아이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엄청 잘해주셨어. 친절한 사람은 복을 받아야 해.”    




친절한 사람은 복을 받아야 한다.라는 아이의 말이 비눗방울처럼 가슴속을 가득 채웠다. 둘은 그분에게 감동한 모양이었다. 한 사람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을 느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언어로는 표현되지 않는 것들은 주고받은 것이다. 부녀가 느끼는 기분의 모양이 비슷했다.    


그 상황을 모르는 나만 피아노 가격 이야기만 했다. 둘의 마음을 알고 나니 나도 당연히 그곳에서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장에 전화를 걸어 계좌이체로 값을 지불하고 배송받을 수도 있었지만 둘은 그 분과 두 눈을 마주치며 사고 싶다고 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듯 신나게 발걸음을 옮겼다.     

물건에는 가격을 매길 수 있지만 친절은 값을 매길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마음이 피어난다. 감정의 크기는 젤 수 없다. 살면서 그때 받은 고마운 마음은 깊이 새겨지는 법이다. 아이가 피아노를 칠 때마다 그분을 떠올릴 것이다.    

어떤 분이셨을까? 혼자 상상해본다.     


상대를 향한 마음은 억지로 만들 수 없다. 전자제품처럼 조립할 수도 없다. 둘은 그 날 피아노뿐 아니라 피아노가 연주한 선율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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