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13년이 지났다.
그 이후 13년이 지났다.
단국대 가는 길이 약간 바뀌었다. 도담마을을 지나 아파트 나무숲에 원형 계단을 두 바퀴 돌면 정면으로 n 교회가 보인다. -원형 계단 가운데는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교회 주축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로변을 몇 걸음 걷다 보면 학사주점들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학사주점들은 내가 매일 출근할 때 보던 가게들이었다. 상권이 그쪽에서 어떻게 운영되는 건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겉으로만 스쳐 갔고 거기서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해 본 적이 없다.
주점들을 지나고 나면 원룸들이 나오고 내가 일했을 당시에는 없던 치대 건물이 처음 반겨준다.
학사 주위를 가로지른 아스팔트 길 위로 버스 종점을 지나, 주차타워를 돌면 내가 일했던 분리수거장이 나온다.
일이 거기부터 시작됐다. 나는 말한다. 내가 하던 일이 안정적이기 않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생각했다. 내 딴에는 그랬다.
어머니는 당시 내 일에 대해 또 딴지를 걸었다. 뭐 하러 그런 힘든 일을 하니? 네 나이 때에 다른 쉬운 일로 돈 버는 일들이 많은데 왜 그 일을 선택했어?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글쓰기를 과제로 미뤄놓고 생계로 곧바로 이어지는 일은 당일치기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쫓아다녔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단국대 이후 일이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늘 어머니를 원망했다. 어머니가 나를 좀 가만히 놔두었더라면 좀 달라졌을까. 자식이 가는 길이 항상 성에 차지 않고 고생하는 것 같아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안타까워 그랬을 것이리라.
소설을 쓰는데 똥고집만 부렸다. 다양성의 추구. -한때는 그것이 내 소신이었다. 그것이 대중과 소통을 못 하는 장벽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만의 소신만 가지고 글을 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두루두루 섭렵하여 값어치 있는 것을 찾아보려 했지만, 알고리즘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글 쓰는 것과는 한참 멀어지고, 타성에 젖어 들었다. 글을 써서 바로바로 안정적 수입이 나온다면야 그것이 곧바로 나의 일이고 직업이 되었을 것이다.
다른 길을 걸었다.
거슬러 가자면 그랬다.
정작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았고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다.
수년이 지나고 나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그와 비슷한 일이었다. 쓰레기 분류일. 월급도 그렇게 많지 않다.
거기서도 수없이 이야기했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책을 냈다. 여러 용역업체가 상호공존하고 있는 교육장소속 분들한테 사비로 책을 사 나눠주기도 하고, 혹은 강매도 했었다. 그 나비효과는 별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oecd 가입국 중 60살 정년을 기준으로 사업장에 이력서를 갖추어 면접을 본다. -사업장에 근무할 수 있는 나이가 7년은 더 남았다. 아직 이 나이에 단순하고 미세하지 않은 일을 고른 것 같다.
마지막에 선택한 직업치고는 이른 나이에 선택했다.
당신은 너무 젊어, 할 일이 많지 않아? 왜 이러고 있어? 여긴 인생의 마지막 터럭이야. 막장이라고. 막장. 모르겠어?
인생을 더 경험한 뒤에 여길 들어와야 했어.
여러 차례 말을 들었다. 여기를 스쳐 간 인생 선배들에게. 너 나이대에도 아직도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고 일다운 일로 쳐주는 곳으로 갈 수 있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니. 자격증을 더 따는 공부 해. 중장비도 있고. 조경일 도 있건만. 아버지 때문이라 거는 이해가 안 된다. 아직도 네 인생에 대해 게으른 거겠지.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는데 여전히 단국대에서 못 벗어나고 제자리만 돌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