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숙을 향한 마음과 갈팡질팡하는 애절함, 거기에 난데없이 앨빈토플러라니!
생크림 케이크는 과일만을 올리면 만사가 다 어울리고 끝나는 것으로만 알았었다. 버터크림으로 만들어진 케이크보다는 맛은 더 있을지 몰라도 정교함이나 화려함은 뒤처진 것이라고. 무심코 평소 알고 있던 대로 무작위(無作爲)식으로 뽑기를 하듯이 아무 키위나 골라 깎았다.
“그러면 안 되는데. 단단하고 야무진 놈으로 골라 깎아야 해.”
한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일러 주었다.
“그러면 물러터진 것은 안 써?”
내가 되물었다.
“나중에 케이크 샌드를 할 때 속 내용물로 써. 깎아 놓은 것과 구분해 둘 필요가 있어. 키위를 자재과에서 올리자마자 냉동고에 넣는 이유가 온도변화에 민감해서 물러터진을 방지하기 위해서야.”
그녀가 조리 있게 말해주었다. 마치 자상한 보모가 보채는 어린애를 다루는 어조(語調)였다.
“키위는 민감해. 여자들처럼.”
순간 그녀의 미소를 보았다. 너무나도 활짝 웃어 주는 그 하얀 미소를 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 미소는 여태껏 다른 여느 여자에게서 느껴 볼 수 없는 거였다. 술을 같이 마시면서 예사롭지 않았었다. 또 그와는 별개로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하얀 새의 깃털이 잠시 나를 감쌌다. 하얀 뭉게구름 같은 솜털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어쩌면 그녀와 얼굴을 너무도 가까이 맞대고 있어 그런지 모른다. 온몸에 소름이 퍼지고 저렸다. 곧바로 등짝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가 화를 내고 울린 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벌써 잊은 걸까. 화를 내는 순간에 무척 당황했을 뿐. 그 일로 인해 영원히 적을 두고 미움을 행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아량은 있는 여자였을까? 온통 혼란스러웠다. 평소에 하던 대로 돌아가려고 마음은 둥둥 떠다녔다. 애숙도 내게 관심이 있는 건가.
그 미소 때문에 나 말고도 양과 반의 여러 남자가 가슴이 설렜을 것이다. 그녀에게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던 남자들은 대부분이 속상해야 할 일이었다. 애숙은 그 자신 나름대로 상대방 남자가 기분 나쁘지 않게 넘기려고 친절하게 대해 준 것뿐인데 모두 자신에게만 특별히 보여 준 호의라 여긴 것은 아닐까. 나도 실은 헷갈렸다.
가볍게 대해 준 호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나를 다스리는 냉정한 이성적 판단으로 몰아붙이다가도 다른 한 편의 감성은 그렇지 않았다. 그 미소를 보여 준 것은 자신을 눈물 흘리게 한 일들은 간과 되고 그 부분을 빌미로 발단이 여러 차례 이어지길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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