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일상 -술과 장미의 나날들
옆 여자도 나이가 나보다 어린 건지 많은 건지 몰랐다. 그 여자도 정이 들기 무섭게 그만두고 나가서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조차 희미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강원도 사투리는 어색해 말수가 적은 게 사실이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었다. 버릇처럼 말투를 고쳐야겠다. 생각한 적은 없었다. 지방 특색을 깊게 담고 있지만은 않다. 내 말투는 강원도 억양이 밴 것은 아니었다. 단지 좋아하는 남자한테 내가 표현을 못해서 그런 것이 화가 났다. 그 남자가 내게 보여주는 것이 없어 섭섭한 것인지 나조차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내 기분은 뱃속에 덜 들어간 소주에 취하지 않은 것이 얼떨떨한 상태였다. 어쩌면 이렇게 어정쩡하니.
이런 기분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알코올중독자처럼 하루라도 마시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힘들어하는 금단현상으로 하루하루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술을 마실 때는 잠시 술 느낌을 놓친 것이다. 그러다 지나치다 보면 어느 사이에 그때의 강렬한 기억들이 새삼 되살아나 온 사지가 꿈틀꿈틀 튕겨 나가서 심하게 경련이 일어났다. 떨며 몸서리를 쳤다. 기억을 안 하려 해도 매번 그런 식이었다. 퍼뜩퍼뜩 살아나 악몽에 시달렸다. 돌이켜 보건대 거기 조직의 두목 격이나 하던 마담. 그 마담이 가장 나의 곁을 악마처럼 맴돌았다. 악마는 강렬하게도 매혹을 풍겼다. 매혹을 품고 그 자태를 품위와 격조로 휘감아 나를 인도했었다. 생면부지(生面不知)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를 압도적으로 이끌었다. 그 분위기는 그 여자만이 만들어낸 블랙홀이었다. 그곳은 창문이란 것이 없었고 밤만이 존재하며 인위적으로 만든 전기불빛만이 그곳을 비추었다. 그녀의 왕국을 남모르게 침범하여 범주를 넘어서자 그곳을 빠져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애초부터 포기했으며 울음을 토해내다가 모든 것을 거부하였었다.
그 어둠의 근원지를 겨우 피해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한다면 술이란 걸 마시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약같이 극히 안 좋다고 분명히 거부하고 참 힘들게 끊었다가 다시 손을 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술을 멀리하지 못하고 그 강렬한 기억의 소용돌이를 잠깐 지났다가 깨어났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 까마득하게 나락으로 빠질 거 같았지만 단순하게 참 어이없게 그 악마의 손길은 날 가만히 놔주었다. 그리고 스치고 간 곳은 찔끔찔끔 주사를 맞듯이 따끔거렸다. 미열을 앓으면서 간혹 그 기억이 술을 마실 때 살아났다. 나를 괴롭히며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안팎으로 여유 있고 행복해 보이는 동료들과 그 웃음소리가 들렸다.
술을 마실 적마다 발작을 일으키고 내면의 악마가 쫓아다닐 것이다. 정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았다. 매번 시달렸다. 밖으로 수없이 내달리는 이유조차 존재적 가치를 따졌다. 혼돈을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전반의 화두가 나를 기다리는 상태였다.
아마도 술을 안 마신다면야 이런 환영에 시달리면서 괴로워할 이유조차 없지만 술을 멀리할 수 없었고 동료에게 당시의 환영이 나타났다가 사라져 간다, 말할 수도 없었다. 특히 마담과 장안동의 골목을 이야기할 여력을 포함하지 않았다. 술로 기억이 났다가 술로 기억을 잊을 뿐이었다. 언젠가 울음을 삼키며 누군가에게 고백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참 어림없는 치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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